메이오 정변(일본어: 明応の政変)은 일본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메이오(明応) 2년(1493년)에 발생한 아시카가 쇼군(足利将軍)의 폐위 사건이다. 이 정변은 당시 간레이(管領)였던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가 제10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키(足利義材, 후의 요시타네)를 폐위시키고, 승려였던 세이코(清晃)를 환속시켜 제11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즈미(足利義澄)로 옹립한 쿠데타이다.
배경으로는, 제9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사(足利義尚)가 오미(近江) 원정 중 병사한 후, 요시히사의 사촌형인 요시키가 전대 쇼군 요시마사(足利義政)의 정실 히노 도미코(日野富子)의 후원으로 제10대 쇼군에 취임한 상황이 있었다. 그러나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요시키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고, 히노 도미코도 점차 요시키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메이오 2년(1493년) 4월, 요시키가 가와치(河内) 원정에 나간 사이, 마사모토는 히노 도미코, 아카마쓰 마사노리(赤松政則), 이세 사다무네(伊勢貞宗) 등과 연합하여 교토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세 사다무네가 요시키 측에 있던 슈고(守護)와 호코슈(奉公衆)에게 밀서를 보내 이탈을 유도하면서 요시키 세력은 급속히 붕괴하였다. 요시키는 결국 투항하여 교토의 류안지(竜安寺)에 유폐되었다가, 같은 해 6월 측근의 도움으로 엣추(越中)로 탈출하여 엣추 구보(越中公方)라 불리는 별도의 정권을 수립하였다.
이 정변의 결과, 막부의 군사적 기반이었던 호코슈 체제가 붕괴하고 쇼군 권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쇼군과 엣추 구보로 권력이 이원화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분쟁이 계속되었고, 막부의 실권은 호소카와 가문이 장악하게 되었다. 근년 일본사학계에서는 이 메이오 정변을 센고쿠 시대(戦国時代,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또한 같은 해에 발생한 이세 소즈이(伊勢宗瑞, 후의 호조 소운)의 이즈(伊豆) 침공도 이 정변과 연계된 움직임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