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리다오 사건(중국어: 美麗島事件, 병음: Měilìdǎo shìjiàn, 미려도사건)은 1979년 12월 10일, 세계 인권 선언일에 대만(중화민국) 가오슝시에서 잡지 '메이리다오(美麗島)'가 주최한 민주화 시위가 경찰과 충돌하고 주최 측 인사들이 투옥된 사건이다. '가오슝 사건(高雄事件)'이라고도 불리며, 당시 중화민국 정부는 '가오슝 폭력사건 반란안(高雄暴力事件叛亂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잡지명 '메이리다오(美麗島)'는 포르투갈어로 대만을 가리키는 별칭 '포모사(Formosa, 아름다운 섬)'를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배경
1979년 당시 대만은 1949년부터 지속된 계엄령 체제 아래에 있었다. 1978년 장제스 사망 후 아들 장징궈가 총통으로 취임하였고,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하면서 대만과 단교하는 등 대만은 국내외적으로 정치적·사회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경과
메이리다오 잡지사 측은 세계 인권 선언 기념일에 맞춰 가오슝에서 야간 집회 허가를 신청하였으나, 국민당 당국은 이를 불허하였다. 그럼에도 집회는 강행되었고, 당국이 헌병을 포함한 물리력을 동원하여 강제 해산에 나서면서 시위대와 진압 병력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메이리다오 잡지사의 핵심 인사 다수가 체포되어 군법 재판에 회부되었다.
주요 체포 및 재판 인사
반란죄로 기소된 주요 인물로는 황신제(유기징역 14년), 스밍더(무기징역), 린이슝(유기징역 12년), 뤼슈롄(유기징역 12년), 장준홍(유기징역 12년), 천주(유기징역 12년), 야오자원(유기징역 12년), 린홍쉬안(유기징역 12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37명이 기타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당시 변호인단에는 훗날 중화민국 총통이 된 천수이볜(천수이볜)이 참여하였으며, 셰창팅, 쑤전창 등 이후 민주진보당의 주요 인사가 된 변호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향과 의의
메이리다오 사건은 중화민국의 민주화 과정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당 정부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고, 1986년에는 당시 변호인단과 민주화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창당되었다. 이후 1987년에는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이 사건은 대만의 의회제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자주 비교된다.
사건의 재판이 열렸던 군 형무소는 현재 신베이시에 위치한 '징메이 인권문화공원(景美人權文化園區)'으로 조성되어 대만 민주화의 역사를 기리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가오슝 첩운에는 이 사건의 이름을 딴 '메이리다오 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