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헤밍스 벨(Mary Hemings Bell, 1753년경 ~ 1834년 이후)은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노예로 태어난 인물로, 토머스 제퍼슨의 몬티첼로 농장에서 가사 노동자이자 재봉사로 일하다가 백인 상인 토머스 벨(Thomas Bell)과의 사실혼 관계를 통해 자유를 얻은 인물이다.
생애 개요
메리 헤밍스는 엘리자베스(베티) 헤밍스(Elizabeth "Betty" Hemings)의 장녀로, 1753년경 버지니아주 찰스시티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1774년 존 웨일스(John Wayles)의 재산 분할 과정에서 토머스 제퍼슨의 소유가 되어 몬티첼로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정부이자 숙련된 재봉사로 일했다.
메리 헤밍스는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 네 자녀(대니얼, 몰리, 조지프 포셋, 베치 헤밍스)의 아버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1780년대 토머스 제퍼슨이 프랑스 주재 미국 공사로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메리 헤밍스는 샬러츠빌의 상인 토머스 벨에게 임대되었다. 그녀는 토머스 벨과 사실혼 관계를 맺었고, 두 자녀(로버트 워싱턴 벨, 샐리 제퍼슨 벨)를 낳았다.
1792년, 메리 헤밍스의 요청에 따라 토머스 제퍼슨은 그녀와 두 어린 자녀를 토머스 벨에게 매각하였다. 토머스 벨은 이들을 비공식적으로 해방시켰으며, 버지니아 법이 인종 간 결혼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평생을 함께하였다. 1800년 토머스 벨이 사망한 후, 메리 헤밍스 벨은 샬러츠빌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주택과 재산을 상속받아 자유로운 신분으로 살아갔다.
그녀는 몬티첼로에 남아 노예로 있던 아들 조지프 포셋과 딸 베치 헤밍스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1827년 몬티첼로 노예 경매에서 자신의 재정적 능력을 활용하여 조지프 포셋이 자신의 자녀들을 매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역사적 의의
메리 헤밍스 벨은 헤밍스 가문 중 최초로 자유를 얻은 인물이다. 2007년,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에 의해 포로로 잡혔던 사실이 인정되어 미국 독립전쟁의 여성 독립운동가(Patriot of the Daughters of the American Revolution)로 지정되었다. 그녀의 후손으로는 저명한 인권 운동가이자 《보스턴 가디언》 발행인인 윌리엄 먼로 트로터(William Monroe Trotter)가 있다.
추가 정보
메리 헤밍스 벨의 정확한 사망 연도와 매장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1834년 이후의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녀의 아버지의 신원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