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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해리스 존스

메리 G. 해리스 "마더" 존스(Mary G. Harris "Mother" Jones, 1837년 세례 ~ 1930년 11월 30일)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노동운동가, 노조 조직가, 사회운동가이다. '마더 존스(Mother Jones)'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애 개요

메리 해리스는 아일랜드 코크(Cork)에서 천주교도 소작농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정확한 생년월일은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으며, 1837년 8월 1일 세례를 받은 사실만 알려져 있다. 아일랜드 대기근 이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하였고, 이후 토론토의 사범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859년 미국 미시간주의 수녀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이후 시카고와 멤피스로 거처를 옮겼다.

1861년 철공노조 조합원인 조지 존스(George Jones)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으나, 1867년 멤피스에 창궐한 황열병으로 남편과 네 자녀를 모두 잃었다. 이후 시카고로 돌아가 양장점을 운영하였으나,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모든 재산을 잃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노동기사단(Knights of Labor)에 가입하며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노동운동 활동

1897년 이후 '마더 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통일광산노동자(United Mine Workers, UMW)와 함께 활동하며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을 조직하고 지휘하였다. 1902년에는 광산 노동자 파업을 성공적으로 조직하여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03년에는 펜실베이니아의 광산과 제사소에서 벌어지는 아동 노동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며, 필라델피아에서 뉴욕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자택까지 어린이 행진(March of the Mill Children)을 조직하였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IWW)의 공동 창설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생애 전반에 걸쳐 광산, 철도, 섬유 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 파업을 지원하고 조직하였다.

사상 및 영향

존스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과 노동 조건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아동 노동 철폐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녀의 정치관은 1877년 철도 대파업, 헤이마켓 사건(1886), 1882~1885년 공황 등 당대 주요 노동운동 사건들의 영향을 받았다.

사망 및 유산

1930년 11월 30일 사망하였으며, 일리노이주 마운트 올리벳에 위치한 광산 노동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후에도 미국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기억되며, 그녀의 이름을 딴 진보 성향의 시사 잡지 『마더 존스(Mother Jones)』가 1976년 창간되어 현재까지 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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