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에(Meroë)는 아프리카 북동부, 현대 수단 공화국 영토 내 나일강 동쪽 기슭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 하르툼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고대 쿠시 왕국(Kingdom of Kush)의 수도였다.
역사적 배경
쿠시 왕국은 초기에는 더 북쪽의 나파타(Napata)를 수도로 삼았으나, 기원전 6세기경 이집트 파라오 프삼티크 2세의 침략으로 나파타가 파괴된 이후 아스펠타 왕이 수도를 메로에로 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로에는 기원전 590년경부터 서기 4세기까지 수 세기 동안 쿠시 왕국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메로에의 위치는 제5폭포와 제6폭포 사이에 해당하는데, 이 지역은 여름 강우대의 가장자리에 있었으며 철광석과 제철용 목재가 풍부하여 철기 산업이 발달하였다. 또한 홍해로 이어지는 교역로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지녔다.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메로에를 "위대한 도시"이자 "다른 에티오피아인들의 모도시"라고 묘사한 바 있다.
문명과 산업
메로에의 부는 강력한 철기 산업에 기반을 두었다. 아치볼드 세이스가 "아프리카의 버밍엄"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 도시는 철 제련 기술이 발달했으며, 상아, 노예, 희귀한 가죽, 타조 깃털, 구리, 흑단 등을 교역하였다. 또한 직물과 장신구도 수출되었다. 메로에에서는 도자기 산업도 크게 발달하였다.
메로에인들은 독자적인 문자 체계인 메로에 문자(Meroitic script)를 사용하였다. 이 문자는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파생된 것으로, 약 23개의 알파벳 문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원전 2세기경부터 사용되었다. 메로에 언어의 계통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속한다는 견해와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한다는 견해가 학계에서 대립하고 있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메로에의 왕은 전제 군주였으며, 왕모(칸다케, Kandake)와 권력을 공유하였다. 행정 조직에는 재무관, 인장 보관자, 기록관장, 수석 서기관 등이 포함되었다. 메로에인들은 남부 고유의 신인 아페데마크(Apedemak)를 숭배하면서도 이집트의 아문, 이시스, 호루스 등의 신도 함께 숭배하였다.
로마와의 관계
기원전 23년, 메로에 군대가 이집트 남부를 침공하자 로마의 이집트 총독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가 누비아를 침공하여 나파타를 약탈하였다. 이에 메로에 측은 이집트 국경을 넘어 아스완 부근의 도시들에서 많은 조각상을 약탈하였다. 이후 기원전 22년 로마와 메로에 사이에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청동 두상이 메로에의 신전 계단 아래에 묻혀 있었던 것이 발견되어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기 61년에는 네로 황제가 보낸 로마 군인들이 메로에에 도착하여 백나일강을 따라 탐험을 진행하였다.
쇠퇴와 멸망
메로에 왕국은 기원전 1세기~서기 2세기경부터 로마 이집트와의 전쟁과 전통 산업의 쇠퇴로 인해 점차 힘을 잃기 시작하였다. 서기 350년경 악숨 왕국(Axum)에 의해 메로에가 파괴되었으며, 이후 알로디아 왕국이 이 지역을 장악하였다. 다만 일부 학자들은 악숨의 정복 이전에 이미 경제적·정치적 쇠퇴가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유산
메로에 유적지에는 쿠시 왕국의 왕과 왕비들의 무덤으로 세워진 200기 이상의 피라미드가 세 개의 묘지군에 나뉘어 남아 있다. 이들은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경사가 더 가파르고 규모가 작은 누비아식 피라미드의 특징을 보여 준다. 2011년 6월 "메로에 섬의 고고학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메로에 유적은 1821년 프랑스 광물학자 프레데리크 카이요에 의해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졌다. 2023년 발발한 수단 내전 과정에서 메로에 지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일부가 공습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