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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 바자르간

메디 바자르간(Mehdi Bazargan, مهدی بازرگان, 1907년 9월 1일 ~ 1995년 1월 20일)은 이란의 학자, 민주주의 운동가, 정치인으로,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수립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초대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생애 및 학문

1907년 테헤란의 아제르바이잔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정부의 레자 샤(Reza Shah)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파리로 유학을 떠났으며, 파리의 공과대학교 에콜 상트랄(École Centrale Paris)에서 열역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이후 프랑스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저항하였고, 이후 이란으로 귀국하여 테헤란 대학교 공과대학의 초대 학장을 역임하였다. 과학과 이슬람 종교에 대한 깊은 지식을 겸비한 이란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평가받으며, 이란 현대 지적 운동의 시초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정치 활동

1950년대 모하마드 모사데크(Mohammad Mosaddegh) 행정부에서 이란 부총리 및 이란 석유회사 총책임자를 지냈다. 1961년에는 이란 독립운동(자유운동, Freedom Movement of Iran)을 주도하였으며, 팔레비 왕정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운동가로서 6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79년 이란 혁명이 성공한 후, 1979년 2월 4일 루홀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에 의해 이란 임시정부 총리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2월 11일 이란 공화국 초대 총리에 공식 취임하였다. 그러나 1979년 11월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하고 총리직에서 사임하였다. 이후에도 이란 의회에서 활동하며 자유 민주주의적 이슬람 사상을 옹호하였으나, 급진 세력과의 갈등 속에서 정치적 변방에 머물렀다.

사망 및 평가

1995년 1월 2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하였다. 메디 바자르간은 이슬람과 민주주의의 조화를 추구한 이란 현대사의 상징적 인물로, 종교적 신념과 학문적 합리성을 동시에 중시한 점에서 이란 지성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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