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 해거드(Merle Haggard)
개요
멀 해거드는 미국의 컨트리 음악 가수·싱어송라이터·기타리스트·바이올린(fiddle) 연주자이다. 본명은 멀 로널드 해거드(Merle Ronald Haggard)이며, 1937년 4월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올리데일(Oildale)에서 태어나 2016년 4월 6일 캘리포니아주 팔로세드로(Palo Cedro)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79세였다. 컨트리 음악 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며, 내슈빌 사운드에 대항해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형성된 이른바 '베이커스필드 사운드(Bakersfield sound)'의 핵심 선구자로 꼽힌다. 애칭은 '더 해그(The Hag)'이다.
생애
해거드의 부모는 오클라호마주 체코타(Checotah) 출신으로, 1934년 농장이 화재로 소실된 뒤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다. 아버지 제임스 프랜시스 해거드는 철도 회사에 근무하였고, 가족은 올리데일의 화물차(boxcar)를 개조한 주택에서 거주하였다. 아버지는 해거드가 어렸을 때 뇌출혈로 사망하는데, 이 사망 연도는 자료에 따라 1945년 또는 1946년으로 표기되어 차이가 있다. 이후 어머니가 가계를 부양하였다.
해거드는 청소년기에 절도·소매치기·무단결석 등으로 소년원과 교화시설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으며, 1950년대 초에는 텍사스로 가출하기도 하였다. 1957년 베이커스필드의 한 술집에서 강도 행위를 시도하다 체포되었고, 1958년 2월 캘리포니아주 샌퀜틴(San Quentin)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수감 중이던 1958년 같은 교도소에서 열린 조니 캐시(Johnny Cash)의 공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음악가의 길을 결심하였고, 1960년 출소 후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2년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으로부터 과거 범죄에 대한 완전 사면을 받았다.
1962년에는 타리 레코드(Tally Records)를 통해 녹음을 시작하였고, 1964년 'Sing a Sad Song'이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하였다. 1965년 첫 정규 앨범 《Strangers》를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 '(My Friends Are Gonna Be) Strangers'로 처음 전국 톱10에 진입하였다. 1966년 'I'm a Lonesome Fugitive'로 첫 컨트리 차트 1위를 차지한 이후 약 5년에 걸친 활동 기간 동안 미국 컨트리 차트에서 모두 38곡의 1위 곡을 배출하였다. 자신의 전속 밴드인 '더 스트레인저스(The Strangers)'와 함께 활동하였다.
음악적 특징과 대표곡
해거드의 음악은 노동자 계급의 삶, 빈곤, 범죄와 수감, 이별, 중년의 고민 등을 주제로 삼았으며, 거친 질감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를 특징으로 한다. 1969년 발표한 'Okie from Muskogee'는 컨트리 차트 1위를 기록하고 빌보드 전 장르 싱글 차트에서 41위에 오르며 그의 대표곡이 되었으나, 반전·반문화 정서와의 관계를 둘러싸고 노래의 의도에 대한 해석이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다.
주요 곡으로는 'Mama Tried', 'Sing Me Back Home', 'Branded Man', 'Workin' Man Blues', 'Hungry Eyes', 'The Fightin' Side of Me'(1970), 'If We Make It Through December'(1973), 윌리 넬슨(Willie Nelson)과의 듀엣곡 'Pancho and Lefty'(1983) 등이 있다. 1974년에는 시사주간지 《타임(Time)》 표지 인물로 선정되었다.
수상 및 명예
1977년 내슈빌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1994년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 1997년 오클라호마 음악 명예의 전당에 각각 헌액되었다. 1984년 그래미 최우수 남성 컨트리 보컬상('That's the Way Love Goes'), 1999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Mama Tried'), 2006년 그래미 평생 공로상 및 BMI 아이콘상, 2010년 케네디 센터 명예상(Kennedy Center Honors)을 수상하였다. 2017년 《롤링 스톤(Rolling Stone)》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컨트리 아티스트 100인'에서 1위에 올랐고, 2023년 같은 매체의 '역대 최고의 가수 200인'에서는 138위로 선정되었다.
사망
해거드는 2008년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며, 2015년 12월 폐렴으로 입원하였다. 2016년 3월 다시 입원하여 양측성 폐렴으로 4월 예정 공연을 취소하였고, 2016년 4월 6일 79세 생일 당일 폐렴 합병증으로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참고
- 한국어 위키백과는 아버지의 사망 연도를 1945년으로, 영어 위키백과 등은 1946년으로 기재하고 있어 해당 연도에는 출처 간 차이가 있다.
- 한국어 표기 '멀 해거드'는 영어 발음 [mɜːrl ˈhægərd]를 옮긴 것이며, 매체에 따라 '멀 해거드'와 '멀 해가드'로 혼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