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형(孟世衡, 1588 ~ 165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신창(新昌) 맹씨를 두고, 자는 여평(汝平), 호는 하곡(霞谷)이라 불렀다. 충청도 온양(현 충청남도 아산시) 금곡촌 출신으로, 고려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맹희도의 9세손이며, 할아버지는 추증된 맹유백(孟惟白)이다.
생애
- 출생·가문 – 1588년(선조 21) 온양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신창이다. 아버지는 맹희(孟喜), 어머니는 양주조씨(楊州趙氏)다.
- 학문·수학 – 어린 시절 좌윤 여유길(呂裕吉), 장령 조익(趙翊), 참판 이명준(李命俊) 등에게 학업을 받았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송시열·김반 등과 교류하였다.
- 과거 급제 – 1623년(인조 1) 정시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 관직 – 성균관 학유·박사·전적을 거쳐 사헌부감찰, 호조좌랑, 형조정랑, 예조정랑, 춘추관 기주관·종묘서령 등을 역임하였다. 1626년 형조정랑, 1629년 금산군수·장흥부사·제용감정·상이원정·울산부사 등을 맡았다. 이후 성균관 직강·사예·통례원·정주목사·개성부경력·안동부사 등을 거쳐 봉상시정·통정대부(通政大夫)까지 올랐으며, 1656년 6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업적
맹세형은 관직에 있으면서 백성을 사랑하고 절약을 강조하였다. 금산군수 시절에는 군정 정비와 금오성(金烏城) 수축을 주도했으며, 백성에게 과중한 조세를 경감하기 위해 절용(節用)을 실천하고 상부(常賦)를 감면하였다. 이러한 행정 정책은 당시 백성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후 평가
그는 이조 참판에 추증되었으며, 학문과 관직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행적은 《인조실록》·《국조인물고》·《국조방목》·《송자대전》 등 다수의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