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孟)은 중국과 한국의 성씨이다. 한국에서는 신창 맹씨(新昌孟氏)가 대표적인 본관이며,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1,454명, 2021년 조사에서는 22,028명으로 집계되었다.
기원
맹씨의 기원은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나라 제15대 군주인 환공(桓公)의 아들 경보(慶父)의 호(號)가 맹손(孟孫)이었던 데에서 유래하여, 그 후손들이 맹(孟) 자를 따서 성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전국시대 유학자 맹자(孟子, 본명 맹가)가 이 성씨의 대표적 인물이며, 한국과 중국의 맹씨는 대체로 맹자의 후예로 계통을 이어온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맹씨의 역사
한국 맹씨의 시조에 대해서는 신라 진성왕 2년(888년)에 맹자의 39세손 또는 40세손인 맹승훈(孟承訓)이 당나라 한림원의 오경박사(五經博士)로서 유교 경전을 가지고 신라에 동래(東來)하였다는 전승이 있다. 그러나 세보(世譜)가 실전되어 선계(先系)를 고증할 수 없기 때문에, 고려 충렬왕 때 예부전서(禮部典書)를 지낸 맹의(孟儀)를 실질적인 1세조(중시조)로 삼는다. 맹의는 고려 충선왕 때 신창백(新昌伯)에 봉해졌으며, 이후 후손들이 신창(현재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을 본관으로 삼았다.
맹의의 손자 맹희도(孟希道)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어사, 수문전 제학, 한성윤 등을 지냈다. 맹희도의 아들인 맹사성(孟思誠)은 조선 세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하며 조선 초기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한 명재상으로,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로 '고불(古佛)'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신창 맹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3명, 무과 급제자 14명을 배출하였다.
본관
한국 맹씨의 본관은 신창(新昌)이 단본(單本)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2000년 통계청 자료에는 온양 맹씨(溫陽孟氏)가 204가구, 827명으로 별도로 집계되었으며, 이 외에도 광덕 맹씨, 평산 맹씨 등의 소수 본관이 존재하나 인구가 매우 적다.
문화유적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에 위치한 '아산 맹씨 행단(牙山孟氏杏壇)'은 대한민국 사적 제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맹사성과 그의 가계의 위패를 모신 가묘(家廟)가 있는 고택이며, 맹사성·황희·허형이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주요 인물
- 맹사성(孟思誠): 조선 세종 때 좌의정, 우의정 역임
- 맹희도(孟希道): 고려 말 문신, 한림어사
- 맹석흠(孟碩欽): 조선 전기 무신, 적개공신
- 맹형규(孟亨奎): 대한민국 제3대 행정안전부 장관, 국회의원
- 맹상훈(孟床訓): 대한민국 배우
- 맹성규(孟聖圭): 전 국토교통부차관, 정치인
중국 맹씨
중국에서 맹(孟)씨는 《백가성(百家姓)》에 수록된 전통 성씨이며, 맹자(孟子) 외에도 삼국시대의 맹획(孟獲), 맹달(孟達), 남송의 명장 맹공(孟珙) 등 역사적 인물이 다수 존재한다. 현대 중국에서도 맹씨는 널리 분포하는 성씨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