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본 스트리트 탈선사고는 1918년 11월 1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열차 탈선 사고이다. 브루클린 신속 운송 회사(Brooklyn Rapid Transit, BRT)의 브라이턴선(Brighton Line) 통근 열차가 말본 스트리트(Malbone Street, 현 엠파이어 대로) 근처의 급커브 구간에서 과속으로 탈선하여 최소 93명에서 102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이 사고는 뉴욕시 역사상 가장 인명 피해가 큰 철도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배경
사고가 발생한 1918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였다. 당시 BRT는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로 조건으로 인해 노조원들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사고 전날인 10월 31일, BRT 소속 운전사들과 차장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회사는 이들을 대체하기 위해 비숙련 직원들을 투입했다. 사고 열차의 운전을 맡았던 에드워드 루치아노(Edward Luciano)는 BRT 본사에서 회계 보조원으로 일하던 직원으로, 불과 몇 주간의 훈련만을 받은 채 열차 운전에 투입된 상태였다.
브라이턴선은 주로 목재로 만들어진 열차를 운행했으며, 특히 말본 스트리트 터널 입구 부근에는 평소 시속 6마일(약 9.7km/h) 이하로 서행해야 하는 매우 급한 커브 구간이 있었다.
사고 발생
1918년 11월 1일 오후 6시 42분경, 루치아노가 운전하는 브라이턴선 북행 통근 열차(다섯 량 편성)는 만차 상태로 종착역인 프랫 애비뉴(Park Row)를 향해 운행 중이었다. 루치아노는 터널 입구의 급커브 구간에 시속 30마일(약 48km/h)에서 40마일(약 64km/h)의 속도로 진입했다. 이는 권장 속도의 다섯 배 이상에 달하는 속도였다.
과도한 속도 때문에 열차는 커브를 견디지 못하고 탈선했다. 특히 첫 번째 열차 객차는 커브를 완전히 벗어나 터널 벽에 충돌했고, 뒤따르던 목조 객차들은 충격으로 인해 서로 위로 겹쳐지거나(telescoping) 산산조각 났다. 많은 승객들이 파괴된 차량의 잔해에 갇히거나 깔려 사망했다.
인명 피해
사고 직후의 혼란과 스페인 독감 팬데믹으로 인한 시신 처리 문제 때문에 정확한 사망자 수는 집계에 어려움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93명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비공식적인 기록이나 목격자들의 증언으로는 102명에서 150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상자 또한 100명 이상 발생했다. 대부분의 사망자는 가장 심하게 파손된 첫 번째와 두 번째 객차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들이었다.
조사 및 여파
사고 이후 대중의 거센 비난과 함께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뉴욕주 공공 서비스 위원회와 BRT 내부 조사 모두 열차 운전사 루치아노의 과속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BRT의 안전 관리 소홀, 미숙련 운전사를 투입한 결정, 그리고 목조 열차의 취약한 구조 또한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에드워드 루치아노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BRT의 경영진 몇몇도 기소되었으나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없었다.
이 사고는 뉴욕시의 대중교통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 거리명 변경: 사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사고가 발생한 말본 스트리트는 엠파이어 대로(Empire Boulevard)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 안전 규정 강화: 열차 속도 제한이 엄격하게 시행되었고, 급커브 구간에 대한 안전 장치가 강화되었다.
- 열차 교체: 목조 객차의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BRT(이후 BMT로 변경)와 다른 철도 회사들은 점차적으로 강철로 만들어진 열차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이 사고는 강철 객차 도입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 운영 표준 개선: 파업 대체 인력 투입의 위험성이 드러나면서, 철도 회사는 직원 훈련 및 운영 표준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게 되었다.
맬본 스트리트 탈선사고는 미국의 도시 철도 안전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현대적인 안전 시스템의 필요성을 각인시킨 사건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