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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마흔 선언

맥마흔 선언(McMahon Declaration)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5년 7월부터 1916년 3월까지 영국의 이집트 주재 고등판무관이었던 헨리 맥마흔 경(Sir Henry McMahon)과 메카의 샤리프(성주)였던 후세인 빈 알리(Hussein bin Ali) 사이에 오고 간 총 10통의 서신(각각 5통씩)을 가리키는 역사적 외교 문서이다. 학술적으로는 '후세인-맥마흔 서한'(Hussein-McMahon Correspondence)이 공식 명칭이며, 한국에서는 세계사 교육 과정에서 '맥마흔 선언'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 서신 교환에서 영국 정부는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아랍 반란(Arab Revolt)을 일으키는 대가로, 전후에 광범위한 아랍 지역의 독립을 인정하는 데 동의하였다. 맥마흔은 1915년 10월 24일자 서신에서, 메르시나(Mersina)와 알렉산드레타(Alexandretta) 지역, 그리고 다마스쿠스(Damascus), 홈스(Homs), 하마(Hama), 알레포(Aleppo)의 '구역(districts)' 서쪽에 위치한 시리아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영토에서 아랍의 독립을 인정하고 지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제외 조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하는지 여부는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된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이 맥마흔 선언은 이후 체결된 1916년의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 영토를 분할하기로 한 비밀 협정) 및 1917년의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한다는 영국 정부의 선언)과 상호 모순되는 약속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세 문서는 영국이 제1차 세계 대전 중 아랍인, 프랑스, 그리고 시오니스트에게 각각 상충되는 약속을 한 '이중계약' 또는 '삼중계약'의 사례로 역사학계에서 널리 지적된다.

아랍 측은 맥마흔의 약속에 근거하여 1916년 6월 아랍 반란을 개시하였고, 이는 오스만 제국 패망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전후 영국과 프랑스는 위임통치제도(Mandate system)를 통해 해당 지역을 분할 통치하였고, 이에 후세인은 1919년 베르사유 조약 비준을 거부하였다. 이후 영국이 후세인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면서, 그의 왕국은 이븐 사우드(Ibn Saud)에 의해 정복되었다.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둘러싼 해석 차이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 정부는 1922년 처칠 백서(Churchill White Paper)에서 팔레스타인이 원래부터 맥마흔의 약속에서 제외된 지역이라고 주장했으나, 1918년 당시 영국 외무부의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가 작성한 내부 문서에서는 팔레스타인이 아랍 독립 경계 내에 포함된다고 명시하는 등 영국 내부에서도 해석이 일관되지 않았다. 1939년 영국 정부가 설치한 위원회는 맥마흔의 표현상의 모호함을 인정하였다.

이 서신은 1939년에 이르러서야 영국 정부에 의해 공식 문서(Cmd. 5957)로 발간되었으며, 중동 현대사의 중요한 외교 문서로서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사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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