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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토바 공국

만토바 공국(이탈리아어: Ducato di Mantova)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에 위치했던 역사적 국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일원이었다. 수도는 만토바(이탈리아어: Mantova)였으며, 1530년부터 1708년까지 존속하였다.

역사적 배경

만토바 지역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비잔티움 제국, 롬바르드족, 프랑크족의 침입을 차례로 겪었다. 11세기에는 토스카나 백작 보니파초 디 카노사의 영토에 속하게 되었으며, 이후 토스카나의 마틸데 백작부인이 사망한 뒤 만토바는 자유 코무네(자치 도시)로 발전하였다.

1273년 피나몬테 보나콜시가 민중대장(카피타노 델 포폴로)이 되면서 보나콜시 가문이 만토바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1328년 8월 16일, 곤차가 가문이 주도한 반란으로 보나콜시 가문의 지배가 종식되었고, 곤차가 가문이 만토바의 지배권을 장악하였다.

공국으로의 승격

1433년, 잔프란체스코 곤차가는 신성 로마 황제 지기스문트로부터 만토바 변경백(후작) 작위를 받았다. 이후 1530년 4월 8일, 페데리코 2세 곤차가가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로부터 공작 작위를 받으면서 만토바 변경백국은 만토바 공국으로 승격되었다. 이듬해인 1531년, 곤차가 가문은 결혼을 통해 이탈리아 북서부의 몬페라토 후국(변경백국)을 획득하였다.

문화적 번영

곤차가 가문의 통치 아래 만토바는 북부 이탈리아의 주요 예술·문화·음악 중심지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페데리코 2세는 건축가 줄리오 로마노에게 팔라초 델 테 건설을 의뢰하였으며, 도시의 건축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1624년에는 페르디난도 곤차가가 건축가 니콜로 세브레곤디가 설계한 빌라 델라 파보리타로 궁전을 옮기기도 하였다.

쇠퇴와 멸망

곤차가 가문의 직계가 단절된 후, 가문의 프랑스 계열 방계인 곤차가-느베르 가문이 만토바를 계승하였다. 이 시기 만토바 계승 전쟁(1628~1631년)이 발발하였고, 1630년에는 약 36,000명의 란츠크네히트 용병으로 구성된 제국군이 만토바를 포위하여 도시는 큰 피해를 입었다. 만토바는 이 재앙 이전의 상태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던 페르디난도 카를로 곤차가는 전쟁 패배 후 요제프 1세 황제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났고, 1708년 그가 사망하면서 만토바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몬페라토 영토는 사보이아 공국에 편입되었다.

이후의 역사

만토바는 1786년 요제프 2세 황제의 칙령으로 밀라노 공국에 일시적으로 합병되었으나, 1791년 레오폴트 2세 황제의 행정 구역 분리로 다시 복구되었다. 1796년 나폴레옹 군대에 포위되어 1797년 함락되었고, 이후 캄포포르미오 조약에 따라 치살피나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만토바 공국은 곤차가 가문의 후원 아래 르네상스 시기 북부 이탈리아의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로 기능하였으며, 오늘날 만토바 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궁전 건축물 등을 통해 그 역사적 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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