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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코 고젠

만코 고젠(만코고젠/만고고젠, 일본어: 満功御前, まんこうごぜん/まんごうごぜん)은 일본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 초기의 인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표상은 가마쿠라 시대의 무장 형제인 소가 형제(曾我兄弟)의 생모라는 것이다. 일본 고전 문학의 대표적 군기물(軍記物)인 『소가모노가타리(曾我物語)』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정작 '만코'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존재한다.

소가 형제의 생모 설

『소가모노가타리』 본문에서는 소가 형제의 생모를 '카와즈노뇨보(河津の女房)' 또는 '소가노뇨보(曾我の女房)'로만 칭하며 그 이름을 명시하지 않는다. 그녀는 아버지가 요코야마 토키시게(横山時重)로 추정되며, 먼저 사에몬노죠 나카나리(左衛門尉仲成)에게 시집가 1남 1녀를 낳은 후, 이즈노카미 미나모토노 나카츠나의 모쿠다이였던 나카나리가 상경하자, 쿠도 모치미츠의 손녀였던 그녀는 카와즈 스케야스(河津祐泰)에게 재혼하였다.

스케야스와의 사이에서 장남 스케나리(祐成)와 차남 토키무네(時致), 즉 소가 형제를 비롯해 여러 자녀를 두었다. 스케야스가 쿠도 스케츠네(工藤祐経)에게 살해당하자, 그녀는 어린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것을 당부했다. 이후 시아버지 이토 스케치카(伊東祐親)의 설득에 따라 스케야스의 사촌인 소가 스케노부(曽我祐信)의 후처로 재혼해 3남을 더 두었으나, 이토씨 몰락 후에는 형제들에게 복수를 포기하라고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형제는 결국 원수를 갚았고, 그녀는 형제의 장례를 치른 뒤 스케나리의 첩이었던 토라고젠(虎御前)과 함께 명복을 기렸다. 그녀는 복수가 이루어진 지 7주기가 되는 날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코'라는 이름 자체는 『소가모노가타리』 본문에 나오지 않지만, 에도 시대 중기 무렵부터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교호 9년(1724년) 초연된 가부키 『시집 이즈 일기(嫁入伊豆日記)』를 시작으로 이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른 인물 설

또한 '만코'가 소가 형제의 생모가 아닌 다른 인물을 가리킨다는 설도 존재한다. 첫째로, 『소가모노가타리』에서는 형제의 생모와 별개로 쿠도 스케츠네의 아내였던 만코(満功/万劫)가 등장한다. 이토 스케치카의 딸인 이 만코는 숙부인 스케츠구의 유언에 따라 스케츠네와 결혼했으나, 스케치카가 스케츠네를 위협으로 여기게 되자 그 소령을 압수하고 딸을 도히 토오히라와 재혼시켰다고 한다.

둘째로, 에도 시대 초기에 성립된 『히가시오키 군기(東奥軍記)』, 『와가 잇큐 차제(和賀一揆次第)』 등에서는 만코(満功/万公/万功)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아내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 전승에 따르면 요리토모가 유배 생활을 하던 시절 이토 스케치카의 딸 만코와의 사이에서 아들 하루와카(春若)를 낳았으며, 하루와카는 와가씨(和賀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름의 유래에 대한 논의

민속학적 관점에서 '만코(マンコウ/マンコ)'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중심의 민화·전승은 일본 각지에 존재하며, 그 대부분은 젊은 나이에 자식과 이별한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민속학자 사사키 키젠(佐々木喜善)이 『청이초지(聴耳草紙)』에서 소개한 '나가스다 만코(長須田マンコ)'는 어린 나이에 자식과 헤어져 13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러한 점에서 '만코'는 어린 아이의 영혼을 달래는 유행무당이나 회국 비구니 같은 인물들이 모녀 간의 슬픈 이야기를 전파하면서 사용되던 명칭으로, 이들이 스스로를 '만코'라 칭하거나 소가 형제의 어머니 또는 이토 스케치카의 딸이라 자칭한 것이 소설문학에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상과 같이 만코 고젠은 일본 고전 문학과 역사 전승에 실재하는 인물로서, 소가 형제의 생모라는 정설 외에도 다양한 이설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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