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요가나(万葉仮名, Manyōgana)는 일본의 고대 표기 체계로, 한자의 음(音)이나 훈(訓)을 빌려 일본어의 음운을 표기한 방식이다. 이는 일본 최초의 가나(仮名) 체계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나라 시대(奈良時代)에 편찬된 일본 최고의 가집 《만요슈》(万葉集)에 두루 쓰인 데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다.
개요
만요가나는 한자가 지닌 원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한자를 일본어의 각 음절을 나타내는 음성 기호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즉, 의미가 아닌 소리만을 빌려 쓰는 음차(音借) 표기법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만가나"(真仮名) 또는 "샤쿠지"(借字)라고도 불린다. 《고지키》(古事記)와 《니혼쇼키》(日本書紀)의 노래나 주석 표기에도 같은 방식이 사용되었다.
어원
"만요"(万葉)는 "수만 개의 잎"이라는 뜻으로, 일본 고대 와카 선집 《만요슈》의 제목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 "빌린 글자"라는 뜻의 가나(仮名)가 결합되어 만요가나가 되었다. "가나"가 "가나"(gana)로 변한 것은 일본어의 연탁(連濁, 렌다쿠) 현상에 따른 것이다.
발생과 역사
만요가나가 정확히 언제 발생하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실물 자료로는 오사카 난이와궁(難波宮)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木簡)이 있다. 이 목간은 652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와카 시가의 첫 구절로 추정되는 문자들이 적혀 있다. 다만 이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는 5세기의 이나리야마 고분(稲荷山古墳)에서 발견된 철검의 금상명문(金象銘文)이 있으며, 여기에는 "와카타케루 대왕"(獲加多支鹵大王)이라는 이름이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되어 있다. 이를 통해 늦어도 5세기 무렵에는 한자의 음을 빌려 고유명사를 표기하는 방식이 확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에도 시대의 국학자 슌토 성인(Shunto Shonin)은 《만요요지카쿠》(万葉余財角, 1818)에서 만요가나를 정음(正音), 약음(略音), 정훈(正訓), 의훈(義訓), 약훈(略訓), 약구훈(約句訓), 차훈(借訓), 희서(戯書) 등으로 분류하였다. 《고지키》, 《니혼쇼키》, 《만요슈》에 사용된 만요가나는 기원에 따라 분류할 경우 총 973자에 이른다.
표기 방식의 특징
만요가나 표기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한자의 음을 빌린 음가나(音仮名)이다. 이는 다시 한 글자가 하나의 모라(음절)를 나타내는 방식과, 한 글자가 두 개 이상의 모라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세분된다. 예를 들어 "以"(い), "呂"(ろ), "波"(は) 등이 하나의 모라를 나타내는 경우에 해당한다.
둘째는 한자의 뜻을 빌린 훈가나(訓仮名)이다. 이 역시 한 글자가 하나 또는 여러 모라를 나타내는 방식이 있으며, "女"(め), "毛"(け), "蚊"(か) 등이 그 예이다. 또한 "蜂音"처럼 한자 두 글자가 소리 "부"(ぶ)를 나타내는 등 말장난과 복잡한 언어유희를 활용한 표기도 존재하였다.
후대의 영향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에 들어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는 만요가나를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히라가나는 만요가나의 초서체(草書体)에서, 가타카나는 만요가나의 일부 획을 따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만요가나는 일본 문자 체계의 기원이 되는 중요한 표기법으로 평가된다.
또한 당시 일본어에는 현대 일본어보다 모음 수가 많아, 만요가나에는 현대에는 구분되지 않는 갑을(甲乙) 구별이 존재하였다. 만요가나가 사용되던 시대에는 현대 일본어에 존재하는 요음(拗音)이나 촉음(促音)이 없었으므로, 이에 해당하는 만요가나 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 자료
- Seeley, Christopher. A History of Writing in Japan, 1991.
- Takagi, Ichinosuke. Man'yōshū, 1957–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