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滿空, 1871년 4월 26일 ~ 1946년 10월 20일)은 조선과 일제강점기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법호는 만공(滿空)이며, 법명은 월면(月面)이다. 속세의 성은 송씨로, 송만공으로도 불린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본명은 도암(道巖)이다. 한국 현대 불교의 대선사로 평가되며, 석가모니 이래 제76대 조사(祖師)로 전해진다.
생애
1871년 전라도 태인군 군내면 상일리(현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에서 아버지 송신통(宋神通)과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3년(13세)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사에 올랐다가 불상을 보고 감동하여 출가를 결심하였고, 공주군 동학사에 입산하여 진암(眞巖) 문하에서 행자 생활을 하였다. 1884년 경허(鏡虛)의 인도로 서산군 천장사(天藏寺)에서 태허(泰虛)를 은사로 출가하였고, 경허를 계사로 사미십계를 받고 득도하였다.
1895년 충청남도 아산군 봉곡사(鳳谷寺)에서 새벽 범종 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1904년 스승 경허로부터 전법계를 이어받았으며, 이후 예산군 덕숭산(德崇山)에 머무르며 금선대(金仙臺)를 짓고 후학을 지도하였다.
불교 활동과 사상
만공은 이론과 사변을 배제하고 무심(無心)의 태도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수행을 강조하였다. 제자들에게 조주(趙州)의 '무(無)'자 화두에 전념할 것을 가르쳤다. 존재의 본체를 마음, 자성(自性), 불성(佛性), 허공, 주인공, 본래면목, 동그라미(○) 등으로 표현하였으며, 개인의 참된 본질이 우주 만물의 본체와 하나라고 보았다.
덕숭산 수덕사(修德寺), 정혜사(定慧寺), 견성암, 서산 안면도의 간월암(看月庵) 등을 중창하였고, 1920년대 초 선학원(禪學院) 설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선승들의 결사인 선우공제회운동(禪友共濟會運動)에도 참여하였다. 1927년에는 '현양매구(懸羊買拘)'라는 글을 지어 임제종풍(臨濟宗風)의 계승자임을 선언하였다.
독립운동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조선 불교를 지키려 하였다. 1937년 마곡사 주지 시절, 조선총독부 주최로 열린 조선 31본산 주지회의에서 총독부가 조선불교의 일본불교화를 주장하자 이를 공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 조선총독부의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수행과 참선에 정진하였다.
입적과 사후
1945년 광복을 맞이하였고, 1946년 10월 20일 덕숭산 전월사(轉月舍)에서 세수 75세, 법랍 62세로 입적하였다. 입적 당시 거울을 보며 "만공, 70년 동안 나와 동고동락하느라 수고 많았네"라고 중얼거린 뒤 잠들듯 열반에 들었다고 전해진다. 덕숭산에서 다비하여 유골은 덕숭산 금선대 근처에 만공탑을 세웠으며, 진영(眞影)은 경허의 진영과 함께 금선대에 봉안되었다. 사후에 《만공어록(滿空語錄)》과 《만공법어(滿空法語)》가 편찬되었다.
법맥과 제자
경허(75대) - 만공(76대) - 혜암(77대) - 묘봉(78대)으로 법맥이 이어진다. 주요 제자로는 보월(寶月), 전강(田岡), 고봉(古峰), 혜암(惠庵), 춘성(春城), 금오(金烏), 벽초(碧初), 금봉(金鳳) 등이 있으며, 비구니 제자로는 법희(法喜), 만성(萬性), 일엽(一葉) 등이 배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