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센 전투(영어: Battle of Maxen)는 1759년 11월 20일부터 21일에 걸쳐, 작센 선제후국(현재 독일 작센주)의 막센(Maxen)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7년 전쟁(제3차 실레시아 전쟁)의 일부로, 오스트리아군이 프로이센군에 대승을 거둔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배경
1759년은 프로이센에게 매우 불리한 해였다. 프리드리히 대왕(프리드리히 2세)이 이끄는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 스웨덴 등 다국적 연합군을 상대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같은 해 7월 케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8월 쿠너스도르프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프로이센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한편 작센 지역에서 활동하던 오스트리아군 원수 레오폴트 요제프 폰 다운(Leopold Josef Graf Daun)은 9월 6일 작센의 수도 드레스덴을 점령했으나, 9월 25일 호이어스베르다 전투에서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에게 패배하여 보헤미아 방면으로의 보급선이 위협받았다.
전투 경과
프리드리히 대왕은 다운 원수의 오스트리아군을 드레스덴에서 끌어내기 위해, 1759년 11월 15일 자신의 장군 중 한 명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핑크(Friedrich August von Finck) 휘하 약 14,000명의 병력을 오스트리아군 후방으로 보내 보급로를 차단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작전은 오히려 핑크의 부대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운 원수는 이 기회를 포착하여 약 32,000~34,000명의 병력으로 핑크의 부대를 포위했다. 11월 19일, 핑크는 막센 인근 언덕에 방어 진지를 구축했으나, 오스트리아군은 안개에 가려져 접근에 성공했다. 11월 20일 오전, 다운 원수는 4개 종대로 나뉘어 막센을 향해 진격했다. 오스트리아 척탄병대가 프로이센군의 좌익을 공격하여 막센 마을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프로이센군의 우익 역시 브렌타노(Brentano) 장군 휘하의 오스트리아군에게 포위되었다. 프로이센 기병대의 반격 시도는 거친 지형과 오스트리아 용기병대의 역공으로 좌절되었다.
11월 21일, 완전히 포위된 핑크는 돌파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전군의 항복을 결정했다. 다만 일부 기병대(Wunsch 휘하)는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함께 항복했다.
결과 및 영향
오스트리아군의 피해는 전사 304명, 부상 630명에 불과했으나, 프로이센군은 사상자 약 2,000명과 포로 11,741명을 기록했다. 또한 대포 71문, 깃발 96개, 탄약 마차 44대가 오스트리아군의 손에 넘어갔다. 핑크 휘하 전체 병력이 궤멸당한 이 전투는 쿠너스도르프 전투 이후 이미 큰 타격을 입었던 프로이센군에게 또 하나의 치명적인 패배였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에 격노하여 전후 핑크를 군사재판에 회부하였고, 핑크는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다운 원수는 승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드레스덴 인근에서 동계 숙영에 돌입하여, 1759년의 전역은 이 전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