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39 핵폭탄(Mark 39 nuclear bomb)은 미국이 개발한 수소폭탄(열핵폭탄)으로, 1957년부터 1966년까지 운용된 미국의 핵무기 체계이다. 동일한 설계를 기반으로 한 W39 핵탄두와 함께 미국의 전략 폭격기 및 미사일 체계에 실전 배치되었다. 이는 객관적으로 확인된 실존 역사적 무기이므로, 아래 내용은 공개된 사료와 기관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한다.
개요 및 제원
마크 39는 텔러-울람 설계(Teller-Ulam design)에 기반한 2단계 열핵폭탄으로, 위력은 약 3.8메가톤(TNT 환산)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자료는 위력을 3~4메가톤으로 기재하기도 하며, W39와 관련된 자료에서는 3.75메가톤으로 기재하는 경우도 있다.
- 중량: 6,500~6,750파운드(약 2,950~3,060kg)
- 길이: 약 11피트 8인치(약 3.556m)
- 지름: 35인치(약 89cm)
이 설계는 미국 최초의 경량 열핵폭탄이었던 마크 15 핵폭탄 설계를 개량한 것이다. TX-15-X3 설계와 마크 39 Mod 0은 동일한 설계로 간주된다.
W39 핵탄두는 지름 35인치(89cm), 길이 106인치(269cm)였으며, 중량은 6,230~6,400파운드(약 2,826~2,903kg) 사이였다. 본질적으로 마크 39 폭탄과 동일하나 낙하산, 핀(날개), 가짜 노즈(전방부)가 없었다. W39 탄두는 SM-62 스나크 미사일, PGM-11 레드스톤 단거리 탄도 미사일, 그리고 B-58 허슬러의 무기 포드에 사용되었다. SM-64 나바호 미사일이 취소되기 전까지 해당 미사일용 탄두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생산 및 운용
총 700발의 마크 39 폭탄이 1957년 2월부터 1959년 3월 사이에 생산되었다. 마크 39의 퇴역은 1962년 1월에 시작되어 1966년 11월에 완료되었다. 레드스톤 미사일용 W39 탄두 60발은 1958년부터 1963년 사이에 생산·비축되었으며, 스나크 미사일용 W39 탄두 30발은 1958년에 생산되어 1962년 8월부터 1965년 9월 사이에 퇴역했다. 마크 39 폭탄은 B-47 및 B-52 폭격기에 탑재되었다.
파생형
마크 39는 세 가지 개량형(Mod 0, Mod 1, Mod 2)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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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 0: 마크 15의 개량 제안에서 파생되었다. 근접 신관 대신 접촉 신관을 사용하고, 니켈-카드뮴 배터리 대신 열전지를 사용했다. 마크 15보다 약 1,000파운드(454kg) 가벼웠으며, 비행 중 선택 가능한 공중 폭발용 기압 신관 옵션과 비행 중 삽입(IFI, In-Flight Insertion) 시스템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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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 1: IFI 시스템을 제거하고 부스트된 밀봉 피트(sealed pit) 코어를 사용했다. 이는 무기 중량을 줄이고 전력 요구량을 낮추었으며, 더 작고 가벼운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W39 탄두로 전환 가능한 형태였다. 무기에 발사에 필요한 모든 구성 요소가 항상 포함되었으므로, 의도치 않은 기폭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안전 시스템(안전 핀, 고강도 무장 로드, 고전압 안전 스위치)이 추가되었다. Mod 1과 Mod 2의 1차 단계 피트는 농축 우라늄으로 제작된 VIPER II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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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 2: Mod 1에 저고도 투하(laydown) 능력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형태이다. 무기가 목표물에 부딪혀 정지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 기폭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초기에는 '마크 39 Mod 1 빅 테일(Big Tail)'로 불렸으며, 이후 '개량형 빅 테일' 또는 마크 39 Mod 2로 재지정되었다. 새 꼬리 부분은 2단계 낙하산(지름 28피트 낙하산 이후 지름 100피트 낙하산)을 사용했다. Mod 2의 신관 시스템은 접촉 폭발만 허용했다. 원래 MC-772 무장/안전 스위치를 사용했으나, 1960년 1월 승인된 'Alt 197' 수정안을 통해 MC-1288 무장/안전 스위치로 교체되었다.
핵 사고 이력
마크 39 폭탄은 1958년부터 1961년 사이에 최소 4건의 심각한 '브로큰 애로우(Broken Arrow)' 등급 핵사고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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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스 공군기지(1958년 11월): 텍사스주 애빌린 인근 다이어스 공군기지에서 B-47이 이륙 직후 추락·폭발했다. 무기 1차 단계의 고폭탄이 기폭되어 감손 우라늄, 고농축 우라늄, 납이 흩어졌다. 폭발로 깊이 6피트(1.8m), 지름 35피트(10.7m)의 분화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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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크스데일 공군기지(1959년 7월): 루이지애나주 바크스데일 공군기지에서 C-124 수송기가 세 발의 마크 39 Mod 2 무기를 싣고 이륙하다 추락했다. 무기 한 발은 화재로 파괴되었고 나머지 두 발은 분해·회수되었다. 어떤 무기에서도 고폭탄 기폭은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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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주 골즈버러(1961년 1월): 1961년 1월 24일, 두 발의 마크 39 Mod 2를 싣고 가던 B-52 스트래토포트리스가 공중에서 분해되어 추락했다. 폭탄들은 기폭 시퀀스가 시작되는 방식으로 항공기에서 튕겨져 나갔다. 한 폭탄은 낙하산이 작동하여 기폭 시퀀스가 무장/안전 스위치 단계까지 진행되었으나 스위치가 의도대로 작동하여 완전한 기폭을 방지했다. 다른 폭탄은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았고, 신관 시스템이 무장되기 전에 지면에 충돌하여 부서졌다. 두 번째 무기의 열핵 2차 단계 부분은 회수되지 않았다. 골즈버러 사고는 샌디아 국립 연구소의 안전 공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핵폭발에 가장 근접했던 위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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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유바 시티(1961년 3월): 1961년 3월 14일, 두 발의 마크 39 Mod 2(Alt 197 적용)를 탑재한 B-52가 유바 시티 서쪽 약 15마일(24km) 지점에 추락했다. 한 무기는 비교적 온전했으나, 다른 하나는 충돌 후 항공기에서 분리되어 내부 부품이 탄도 케이스 밖으로 튀어 나갔다. 두 무기 모두 고폭탄은 기폭되지 않았다.
전시
마크 39 Mod 2 케이싱(외장) 모형이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있는 미국 공군 국립 박물관의 냉전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이 폭탄은 1993년 커트랜드 공군기지의 국립 원자력 박물관에서 기증받은 것이다.
마크 39 핵폭탄은 냉전 시기 미국의 핵억지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실존 무기 체계로, 이후의 미국 핵무기 안전 설계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