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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츠 대성당

마인츠 대성당(독일어: Mainzer Dom)은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주 마인츠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 주교좌 성당이다. 정식 명칭은 '마인츠의 높은 성당'(Der Hohe Dom zu Mainz)이며, 성 마르티누스(투르의 마르티누스)에게 봉헌되어 '성 마르틴 대성당'(Martinsdom)으로도 불린다.

개요

  • 소재지: 독일 마인츠 구시가지 중심, 시장 광장(Markt) 인근
  • 종파: 로마 가톨릭교회
  • 지위: 마인츠 교구의 주교좌 성당(대성당)
  • 봉헌 대상: 성 마르티누스 (동편 성가대석은 성 스테파누스에게 봉헌)
  • 착공: 975년 또는 976년
  • 최초 봉헌: 1009년 8월 29일
  • 건축 양식: 본래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이후 고딕 양식(예배당·종탑)과 바로크 양식(지붕)의 요소가 가해짐

역사

마인츠 대성당은 975년경 마인츠 대주교 빌리기스(Willigis, 재위 975~1011)의 명으로 착공되었다. 그는 로마의 옛 성 베드로 대성당을 모델로 삼아 마인츠를 '제2의 로마'로 만들려는 구상 아래 새 성당 건립을 지시하였다. 건물의 주된 재료는 사암(적색 사암)이었다.

1009년 8월 29일 최초 봉헌이 이루어졌으나, 봉헌식 당일 화재로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 이후 대주교 바르도(Bardo)의 주도로 재건이 진행되어 1036년까지 주요 부분이 완성되었다. 11세기 말 하인리히 4세의 명으로 동편 성가대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개축되었고, 이후 12세기에 걸쳐 중앙 신랑이 다시 정비되어 1200년경 리브 볼트(rib vault) 천장이 설치되었다. 서편은 13세기 이후 고딕 양식으로, 18세기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각각 개조되었다.

1767년 서쪽 교차탑이 낙뢰로 손상되자 1769년 엔지니어 프란츠 이그나츠 미하엘 노이만이 바로크 양식의 석조 지붕을 설계하였으며, 이때 유명한 풍향계 '돔스기켈(Domsgickel)'이 추가되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군의 침공과 그 여파로 성당은 큰 피해를 입고 한동안 군대 숙영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복원이 이루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 중 1942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지붕과 회랑 상층이 파괴되었으나 볼트는 견뎌냈다. 1975년 착공 1000주년을 기념하였으며, 2001년부터 내외부에 대한 대규모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건축 및 의의

성당은 3랑 구조를 이루며, 동서 양쪽에 성가대석(2중 성가대)을 둔 것이 특징이다. 중앙 신랑의 높이는 약 28m로 알려져 있다. 내부에는 역대 마인츠 선제후 대주교들의 묘와 기념물, 1000년에 걸친 종교 미술품이 보존되어 있으며, 인쇄술의 발명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도 이곳에 묻혀 있다.

마인츠 대성당은 슈파이어 대성당, 보름스 대성당과 함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대성당'(Kaiserdome) 세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중세 시대에 독일 왕(과 왕비)의 대관 권한은 마인츠 대주교에게 있었으며, 실제로 콘라트 2세(1024), 하인리히 라스페(1246) 등 여러 군주가 이 성당에서 대관되었다. 1184년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는 이곳에서 아들들의 기사 서임식을 거행하였고, 1188년에는 제3차 십자군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하기도 하였다.

참고

일부 한국어 자료는 이 성당을 '독일 3대 성당 중 하나'로 소개하나, 이는 위의 '황제 대성당' 3곳(마인츠·슈파이어·보름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이며, 독일 내 다른 대성당(쾰른 대성당 등)을 포함한 순위를 정하는 공식적 기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주

  • 독일어 위키백과 「Mainzer Dom」
  • 영어 위키백과 「Mainz Cathedral」
  • 한국어 위키백과 「마인츠 대성당」
  • 마인츠 관광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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