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버나드 뮤케이시(영어: Michael Bernard Mukasey, 1941년 7월 28일~)는 미국의 변호사이자 법관으로, 제81대 미국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생애 및 학력
뮤케이시는 1941년 7월 28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벨라루스의 바라나비치 근처에서 태어나 1921년 미국으로 이민한 유대인 가계 출신이다. 뮤케이시는 맨해튼의 현대 정통파 유대교 예비학교인 라마즈 스쿨을 졸업한 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예일 로스쿨에서 법학 학사 학위(LL.B.)를 받았다. 예일 로스쿨 재학 중에는 『Yale Law Journal』의 편집 위원으로 활동했다.
법조 경력
뮤케이시는 1967년부터 1972년까지 Webster, Sheffield, Fleischmann, Hitchcock & Brookfield 법률 사무소에서 준법률가(associate)로 일했으며, 이후 4년간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 검사실에서 부검사(Assistant U.S. Attorney)로 재직했다. 이 시기 그는 루돌프 줄리아니와 함께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6년에는 Patterson Belknap Webb & Tyler 법률 사무소에 합류하였고, 1993년 봄부터는 컬럼비아 로스쿨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연방 판사 경력
1987년 7월 27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 판사로 지명되었고, 같은 해 11월 6일 상원 인준을 거쳐 11월 9일 임명되었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수석 판사(Chief Judge)를 역임했으며, 2006년 8월 1일 고위 판사(Senior Judge) 지위에 들어갔다가 같은 해 9월 9일 퇴임했다.
재판관 재임 기간 동안 그는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와 관련된 오마르 압델 라흐만 및 엘 사이드 노사이르의 형사 기소 사건을 주재하여 이들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또한 호세 파디야 사건, 세계무역센터 붕괴 관련 보험 분쟁 소송等重要案件을 담당했다.
법무부 장관 경력
2007년 9월 1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알베르토 곤잘러스의 사임에 따라 뮤케이시를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2007년 11월 8일 상원 인준 투표에서 찬성 53표, 반대 40표로 가까스로 확정되었으며, 이는 50년 만에 가장 좁은 표차로 확정된 법무장관 인준이었다. 2007년 11월 9일 취임하여 2009년 1월 20일 부시 행정부 종료와 함께 퇴임했다.
법무장관 인준 청문회 과정에서 그는 수중고문(waterboarding)이 고문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 입장 표명을 거부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로 인해 여러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퇴임 이후
법무장관직 퇴임 후 국제 로펌 데보이스 & 플림튼(Debevoise & Plimpton)의 고문 변호사(of counsel)로 활동 중이다. 또한 외국 대리인 등록법(FARA)에 따라 이란 저항국민평의회(National Council of Resistance of Iran)를 대리하는 자로 등록되어 있다.
주요 논란 및 입장
뮤케이시는 수중고청(waterboarding)이 고문이 아니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으며, 국가 안보 차원에서 행정부 권한 확대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CNN 인터뷰에서도 수중고문을 고문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08년 청문회에서는 자신이 수중고문을 받는다면 고문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크랙 코카인과 분말 코카인 간의 형량 불균형 완화에 반대한 입장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USA PATRIOT Act를 옹호하는 견해를 표명했다.
2025년에는 『The American Lawyer』의 평생 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 수상자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