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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키우스

마우리키우스(Mauricius, 라틴어: Flavius Mauricius Tiberius Augustus, 그리스어: Μαυρίκιος, 539년 ~ 602년 11월 27일)는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제64대 황제이자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582년부터 602년까지 20년간 제국을 통치하였다.

출생과 배경

마우리키우스는 539년 소아시아 카파도키아 지방의 아라비수스(현재 튀르키예 네브셰히르 인근)에서 태어났다. 그의 혈통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하는데, 카파도키아 출신의 그리스인이라는 기록과 아르메니아계 이주민이라는 기록이 혼재한다. 560년대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상경하여 당시 황실 친위대(엑스쿠비토레스)의 지휘관이었던 티베리우스 2세의 수행원이 되었고, 티베리우스가 574년 카이사르로 지명되자 그를 대신해 엑스쿠비토레스 병단의 지휘관(코메스)으로 임명되었다.

즉위

577년 동로마 제국군 동방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마우리키우스는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활약하였다. 581년에는 가산 왕국군과 연합하여 페르시아 영토 깊숙이 진격하는 등 군사적 역량을 입증하였다. 582년 8월 13일, 임종을 앞둔 티베리우스 2세는 마우리키우스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자신의 둘째 딸 콘스탄티나와 결혼하게 하였으며, 다음 날 티베리우스 2세가 사망하자 마우리키우스가 새 황제로 즉위하였다.

통치

마우리키우스의 통치 기간 동안 동로마 제국은 여러 전선에서 비교적 안정된 국면을 유지하였다. 584년 이탈리아 중북부에 라벤나 총독부(엑사르카투스)를 설치하여 랑고바르드족의 남하를 저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586년 솔라콘 전투에서 사산조 페르시아군을 격파하였고, 591년에는 사산조의 왕위 쟁탈전에 개입하여 호스로 2세를 복위시켜 주었다. 그 대가로 아르메니아와 코카서스 지역의 상당한 영토를 할양받아 동방 국경을 확장하였다.

발칸 반도에서는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의 침입에 맞서 방어전을 수행하였으며, 2세기 만에 전통적 국경이었던 다뉴브 강을 건너 이민족의 영역에서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또한 《스트라테기콘》(Strategikon)이라는 군사 교범이 마우리키우스의 저술로 전해지는데, 이는 비잔티움 군사 전술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최후

끊임없는 전쟁으로 재정이 고갈되자 마우리키우스는 긴축 정책을 시행하였고, 이는 군대와 시민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602년, 도나우 강 방어선에 주둔하던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포카스를 지도자로 추대하였고, 반란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하였다. 마우리키우스는 도성을 방어하지 못하고 퇴각하다가 체포되었으며, 602년 11월 27일 그의 다섯 아들과 함께 참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시신은 바다에 던져졌다가 이후 수습되어 성 마마스 교회에 안장되었다.

역사적 평가

마우리키우스는 성실하고 유능한 군주로 평가되나, 재정 긴축과 엄격한 통치 방식으로 인해 민중과 군대의 지지를 잃은 점이 그의 몰락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의 사후 호스로 2세는 '은인의 복수'를 명분으로 동로마 제국을 대대적으로 침공하였고, 이는 7세기 초 동로마 제국의 위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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