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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왈리

마왈리(아랍어: مَوَالِي, 단수형: 마울라/مَوْلَى)는 우마이야 왕조 시기 이슬람 제국에서 비아랍계 무슬림을 지칭하던 사회적 신분 및 계급을 가리키는 역사적 용어이다. 아랍어로 '피보호자' 또는 '후견을 받는 자'라는 뜻을 지닌다.

7세기 중반 이후 이슬람 제국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시리아, 페르시아(이란), 이집트 등지의 토착민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들은 종교적으로는 아랍인과 같은 무슬림이었으나, 사회적·경제적·법적으로는 아랍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마왈리는 아랍인에 비해 군인으로 복무할 경우 월급을 적게 받거나 직업 선택에 제한을 받았으며, 인두세(지즈야)를 계속 납부해야 하는 차별을 겪었다. 또한 마왈리 남성이 아랍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될 정도로 엄격한 신분 차별이 존재했다.

이러한 차별은 마왈리들의 불만을 누적시켰고, 이들은 시아파 등 반(反)우마이야 세력과 결합하여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저항 운동에 참여하였다. 제2차 피트나(내전) 시기에는 많은 마왈리들이 이라크를 장악한 무크타르 알-사카피의 휘하에 들어가 우마이야 왕조 및 아랍 기득권층에 맞서 싸웠다. 이후 칼리프 우마르 2세(재위 717~720)가 마왈리에 대한 차별 완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그 정신을 이어받은 아바스 왕조(750년 ~ )는 보다 코스모폴리탄적인 정책을 통해 마왈리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철폐하였다. 제3차 피트나 시기에는 많은 마왈리들이 압바시야 혁명군(아바스 왕조의 혁명 세력) 하에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세기의 아랍 문학가 알-자히즈는 마왈리를 '공동체의 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며, 우마이야 시대 권력자들이 마왈리를 정치적 목적으로 억압한 사례도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칼리프 히샴(재위 724~743)은 이라크의 부지사에게 페르시아계 마왈리를 고문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역사학적으로 마왈리는 초기 이슬람 제국이 아랍인 중심의 부족 사회에서 다민족·다문화 제국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갈등과 신분 문제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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