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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카타 이와오

마쓰카타 이와오(일본어: 松方巌, 1862년 5월 4일~1942년 8월 9일)는 일본 제국의 실업가이자 정치인, 화족(華族)이다. 성은 마쓰카타(松方)이며, 이름은 이와오(巌)로, 구자체로는 巖으로도 표기된다. 일본 제국 시기 귀족원 공작 의원을 지냈다.

생애

마쓰카타 이와오는 일본 메이지·다이쇼·쇼와 시기의 정치인이자 재정가로 잘 알려진 마쓰카타 마사요시(松方正義)의 장남으로, 가고시마(鹿児島)에서 태어났다. 마쓰카타 마사요시는 제4대 및 제6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지낸 인물이다.

1883년 그는 독일로 유학하여 라이프치히 대학 등지에서 수학했다. 귀국 후 1886년 교제관(交際官) 시보(試補)가 되었으나, 이후 실업계로 전직하여 주로 금융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그가 맡았던 주요 직책으로는 주고 은행(十五銀行) 부행장과 행장, 도쿄 은행 집회소(東京銀行集会所) 부회장, 도쿄 상업 회의소(東京商業会議所) 특별의원, 타이쇼 은행(泰昌銀行) 행장, 요코하마 정금은행(横浜正金銀行) 이사, 제국 창고 운수(帝国倉庫運輸) 이사 등이 있다.

아버지 마사요시가 1924년 사망하자 같은 해 9월 1일 공작위(公爵位)를 습작(襲爵)하여 귀족원 공작 의원에 취임하였다.

쇼와 금융공황과 사회적 책임

1927년 4월 쇼와 금융공황(昭和金融恐慌)으로 인해 그가 행장으로 있던 주고 은행이 사실상 파산에 이르렀다. 이에 그는 책임을 통감하여 자산 약 490만 엔을 제공한 것 외에도 도쿄 미타(三田)의 저택, 나스(那須)의 농장, 아타미(熱海)의 별장, 다수의 골동품 등 사재(私財)의 대부분을 처분하였다. 같은 해 11월 29일에는 궁내성에 작위 반납을 신청하였으며, 12월 6일에 귀족원 공작 의원직을 사직하고 작위까지 반납한 뒤 일체의 공직에서 물러났다.

1942년 사망하였으며, 도쿄의 아오야마 영원(青山霊園)에 안장되었다.

가문과 후계

마쓰카타 가문의 가독(家督)은 이복 막내 동생이자 아버지 마사요시의 15남인 사부로(三郎)가 이와오의 양자가 되는 형식으로 이어졌다. 부인은 나가요 센사이(長與專齋)의 장녀인 나가요 야스코(長與保子)이다. 장녀 구로키 다케코는 구로키 산지 백작의 부인이 되었다.

평가

마쓰카타 이와오는 아버지 마사요시의 후광 아래 금융계에서 활동한 인물이나, 주고 은행 파산 당시 사재 대부분을 방출하고 작위까지 반납한 일화로 일본 근대경제사 및 화족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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