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마쓰노 라이조

마쓰노 라이조(일본어: 松野 頼三, まつの らいぞう, 1917년 2월 12일~2006년 5월 10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구마모토현 야마가시에서 태어났으며, 게이오기주쿠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히타치 제작소에 입사했다. 1940년 해군경리학교에 입학하여 해군 장교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계급은 해군 주계소좌였다.

전후에 중의원 의원이었던 아버지 마쓰노 쓰루헤이(松野鶴平)가 공직 추방을 당하자 대신 정계에 진출했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내각총리대신의 비서관을 거쳐 1947년 4월 총선에 일본자유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15선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1955년 보수합동으로 자유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주요 경력으로는 제2차 기시 내각에서 총리부 총무장관(1958년), 노동대신(1959년), 제1차 사토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1965년) 및 농림대신(1966년)을 역임했다.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의 최측근으로 '사토파 5봉행(佐藤派五奉行)' 중 한 명으로 꼽혔으며, 같은 파벌의 멤버로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호리 시게루(保利茂), 아이치 기이치(愛知揆一), 하시모토 도미사부로(橋本登美三郎)가 있었다.

1966년 농림대신 재직 중 신혼인 딸 부부와 함께 라스베이거스 등을 관비로 여행한 사실이 발각되어 '검은 안개 사건(黒い霧事件)'의 일환으로 논란이 되었고, 이로 인해 농림대신에서 물러났다. 1979년에는 더글러스-그러먼 사건 연루 의혹과 함께 닛쇼 이와이(日商岩井)로부터 다액의 정치 헌금을 수령한 사실이 알려져 국회에 소환되었고, 정치 헌금으로 5억 엔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이후 의원직에서 물러나 자민당을 탈당했으나, 1980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자민당에 복당했다.

1990년 총선에서 낙선한 후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고이즈미가 2001년 자민당 총재가 된 이후에는 스승으로서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장남 마쓰노 요리히사(松野頼久)도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2006년 5월 10일, 도쿄도 미나토구의 한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89세. 사후 정3위에 추서되었으며 욱일대수장이 추증되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