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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식 (당나라)

마식(馬植, ? ~ 857년)은 중국 당나라 후기의 관료로, 자는 존지(存之)이며, 봉상부(鳳翔府) 부풍현(扶風縣) 출신이다. 당 선종(宣宗) 연간에 재상을 지냈다.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가계와 초기 관직

마식의 집안은 부풍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버지 마훈(馬曛/馬勳/馬勛)이 봉주(鳳州) 자사를 역임한 것 외에 조상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는 당 헌종(憲宗) 연간인 원화 14년(819년)에 진사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제책과(制策科)에도 합격하였다. 당 문종(文宗) 연간인 태화 2년(828년)에는 현량방정능직언극간과(賢良方正能直言極諫科)에 응시하여 제4등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수주 단련부사(團練副使), 비서성 교서랑(校書郞) 등을 거쳐 요주(耀州) 자사를 역임하였다. 요주 자사 재임 중에는 마당(馬塘)과 토호(土湖)를 축조한 기록이 있다.

안남도호 재임 시절

개성 원년(836년), 마식은 안남도호(安南都護)·어사중승(御史中丞)·안남초토사(安南招討使)로 전임되었다. 그는 문학적 능력뿐 아니라 유능한 행정가로 평가받았다. 개성 3년(838년)에는 무륙현(武陸縣)을 주(州)로 승격시켜 줄 것을 조정에 요청하여 승인받았으며, 현지 부족 수령들이 자제를 인질로 보내고 공물을 바치는 등 통치 성과를 거두었다. 개성 4년(839년)에는 무륙주 관내에서 진주(眞珠)가 다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는 상주문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후 검중도(黔中道) 관찰사로 승진하였다.

당 무종 연간

회창 연간(841년~846년)에 마식은 장안으로 소환되어 광록시경(光祿寺卿), 대리시경(大理寺卿)을 지냈다. 그러나 당시 수상이었던 이덕유(李德裕)에게 중용되지 못하여 실권을 행사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이덕유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당 선종 연간과 재상 재임

회창 6년(846년) 당 선종이 즉위하면서 이덕유가 실각하자, 마식은 형부시랑(刑部侍郞)으로 승진하고 제도염철전운등사(諸道鹽鐵轉運等使)에 보직되었다. 대중 2년(848년) 정월에는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임명되어 실질적인 재상이 되었고, 중서시랑(中書侍郞)으로 승진하며 예부상서를 겸직하였다.

그러나 대중 4년(850년), 마식은 선종이 신임하던 환관 마원지(馬元贄)와 동성동본(同姓同本)을 근거로 종친 관계를 맺고 가깝게 지내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선종이 마원지에게 하사한 통천서대(通天犀帶)를 마식이 차고 조회에 나갔다가 발각되면서, 선종은 그를 재상 직위에서 파면하고 천평군(天平軍) 절도사로 보직 이동시켰다. 이후 심복 관리 동모(董侔)의 자백으로 마원지와의 결탁 사실이 드러나면서 마식은 상주(商州) 자사로 좌천되었다. 대중 5년(851년)에는 파직되어 태자빈객(太子賓客)이 되었고, 낙양 동도(東都) 분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말년

대중 9년(855년), 마식은 충무군(忠武軍) 절도사 겸 허주(許州) 자사로 재기용되었다. 대중 11년(857년) 4월 이전 무렵에는 선무군(宣武軍) 절도사 겸 변주(汴州) 자사로 전임되었으나, 그 해 8월 이전에 재임 중 사망하였다.

가계

마식의 아버지는 마훈이며, 아들 마욱(馬郁)과 손자 마주(馬儔)가 있었다. 당대의 다른 마씨 성 재상인 마수(馬燧)·마주(馬周)의 집안과는 친척 관계가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평가

마식은 문학적 능력과 행정 능력을 겸비한 인물로 평가되며, 안남 지역에서의 통치 성과와 요주에서의 토목 사업 등이 기록에 남아 있다. 다만 재상 재임 시절 환관과의 결탁으로 파면된 일은 그의 정치적 생애에서 주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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