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베니아미노브나 유디나(러시아어: Мари́я Вениами́новна Ю́дина, Maria Veniaminovna Yudina, 1899년 9월 9일 ~ 1970년 11월 19일)는 소련의 피아니스트이다.
생애
마리아 유디나는 러시아 제국 비텝스크주 네벨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베니아민 유딘은 생리학자 겸 법의학 전문가였으며, 넷째 자녀로 태어났다. 페트로그라드 음악원에서 안나 예시포바와 레오니드 니콜라예프 밑에서 피아노를 공부했으며, 펠릭스 블루멘펠트에게도 개인적으로 잠시 사사했다. 음악원 동급생으로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가 있었다. 1921~22년에는 페트로그라드 대학의 역사철학과 강의를 수강했으며, 1919년에 유대교에서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였다.
음악원 졸업 후 페트로그라드 음악원에서 교수로 초청받았으나, 1930년 무신론 국가였던 소련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 문제가 되어 해고되었다. 이후 수년간 실직과 노숙 생활을 겪은 후, 1932~33년 트빌리시 주립 음악원에서 피아노 대학원 과정을 가르쳤다. 1936년 겐리흐 네이가우스의 제안으로 모스크바 음악원 피아노 교수진에 합류하여 1951년까지 재직했다. 1944년부터 1960년까지는 그네신 연구소(현 그네신 러시아 음악 아카데미)에서 실내악과 성악 반주를 가르쳤으나, 종교적 태도와 현대 서양 음악에 대한 옹호로 인해 해고되었다.
연주 스타일과 평가
유디나의 연주는 뛰어난 기교, 영성, 힘, 지적인 엄격함으로 특징지어지며, 독특한 스타일과 음색으로 다른 연주자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그녀는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성서 주석서처럼 간주하고 설교하듯 연주했다는 일화가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를 통해 전해진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는 그녀의 연주에 대해 "엄청난 재능"을 지녔으나 "자신이 작곡한 것처럼 연주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유디나는 소련에서 알려지지 않았거나 사실상 금지되었던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크레네크, 바르토크 등의 현대 작곡가 작품을 적극적으로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탈린 관련 일화
유디나의 이름은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과 관련된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에 따르면, 스탈린이 어느 날 밤 라디오에서 유디나가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듣고 그 녹음본을 요구했다. 당시는 생방송이었기에 녹음본이 없었고, 관계자들은 밤중에 급히 유디나와 오케스트라를 소집하여 녹음을 진행했다. 지휘자들이 너무 긴장하여 세 번째 지휘자에 이르러서야 녹음이 완료되었으며, 단 한 장의 음반이 제작되어 스탈린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일화로, 유디나는 스탈린이 보낸 금일봉(2만 루블)에 대해 답장을 보내 "국민과 국가에 지은 당신의 커다란 죄를 사해 주시기를 신께 기원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고 전해진다. 이 편지로 인해 그녀는 체포될 위험에 처했으나, 스탈린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 그의 다차에 있던 턴테이블에는 유디나의 모차르트 협주곡 23번 음반이 올려져 있었다고 하나, 이러한 일화들은 일부 출처에 의존한 것으로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인적 네트워크와 말년
유디나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그의 아파트에서 《닥터 지바고》 초고가 처음 낭독되었다고 전해짐), 오시프 만델스탐, 미하일 바흐틴 등 당대 러시아 지식인 및 예술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졌다. 레닌그라드 연주회에서 앙코르로 파스테르나크의 시를 낭독한 일로 5년간 공연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생애 동안 단 한 번도 소련 외부에서 연주하거나 여행한 적이 없었다. 1970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녹음
유디나의 리사이틀은 한동안 녹음이 금지되었으나, 이후 소련 국영 레이블 멜로디야를 중심로 다수의 녹음이 발매되었다. 사후에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쇼스타코비치 등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담은 음반들이 꾸준히 재발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