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루이즈 도를레앙(Marie Louise d'Orléans, 1662년 3월 26일 ~ 1689년 2월 12일)은 프랑스 왕족 출신으로,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의 첫 번째 왕비로서 스페인 왕비를 지낸 인물이다.
생애 1662년 프랑스 파리에서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1세(루이 14세의 동생)와 그의 첫 번째 부인인 헨리에타 앤 스튜어트 사이에서 차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Marie Louise d'Orléans)이다.
1679년 11월 19일, 킨타나르데우엔바(Quintanapalla)에서 카를로스 2세와 대리 결혼을 통해 스페인 왕비가 되었다. 이 결혼은 1678년 네이메헌 조약의 일환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간의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성사된 정략결혼이었다. 1680년 1월 스페인에 도착하여 정식 혼례를 치렀다.
스페인 왕비로서의 삶 스페인 궁정에서 마리루이즈는 활발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남편 카를로스 2세의 총애를 받았으나, 엄격한 스페인 궁정 예법과 기후, 음식 등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시어머니인 마리아나 데 아우스트리아(카를로스 2세의 모후)와의 관계에서도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큰 문제는 후사 생산이었다. 카를로스 2세가 선천적으로 허약하고 생식 능력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당시 사회 분위기상 불임의 책임이 왕비에게 돌려지는 경향이 있었다. 마리루이즈는 여러 차례 임신했으나 유산하거나 사산하는 등 후사를 얻지 못했고, 이로 인해 극심한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사망 및 평가 1689년 2월 12일, 마드리드 왕궁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급사하였다. 공식 사인은 급성 충수염(맹장염) 또는 복막염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시 독살설 등 다양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녀의 죽음은 카를로스 2세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카를로스 2세는 마리루이즈의 친척인 팔츠 공녀 마리아 안나와 재혼하였다.
역사적으로 마리루이즈 도를레앙은 프랑스와 스페인 양국 왕실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희생된 비운의 왕비로 평가받으며, 남편에게 헌신적이었으나 불행한 결혼 생활을 보낸 인물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