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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시리아)

마리(Mari, 쐐기 문자: 𒈠𒌷𒆠, ma-riki, 현대명 텔 하리리; 아랍어: تل حريري)는 오늘날 시리아 동부에 위치했던 고대 셈족 도시국가이다. 유적은 데이르에조르에서 남동쪽으로 약 120km, 아부카말에서 북서쪽으로 11km 떨어진 유프라테스강 서쪽 강둑에 텔(고분) 형태로 남아 있다. 면적은 약 60헥타르에 달한다.

역사

마리는 기원전 2900년경 메소포타미아 초기 왕조 시대 I에 건설된 계획 도시로, 남쪽의 수메르와 서쪽의 에블라 왕국 및 레반트를 연결하는 유프라테스강 무역로를 통제하기 위해 세워졌다. 도시는 홍수 방지를 위해 강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건설되었으며, 길이 7~10km의 인공 운하로 강과 연결되었다.

마리는 세 차례에 걸쳐 왕국으로 번성했다. 제1왕국은 기원전 2550년경 알 수 없는 이유로 버려졌다. 제2왕국(기원전 2500년 이전~기원전 23세기)은 재건되어 동셈어계 국가의 수도가 되었으며, 라이벌 에블라와 오랜 전쟁을 벌였다. 이 시기 마리는 수메르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기원전 23세기경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에 의해 파괴되었다.

제3왕국(샤카낙쿠 시대)은 아카드 왕 마니시투슈에 의해 복구된 후 군사 총독(샤카낙쿠)이 통치했다. 아카드 제국 해체 후 총독들은 독립하여 기원전 19세기 후반까지 마리를 다스렸다. 이후 아모리인 림 왕조(기원전 1830년경~기원전 1761년경)가 수립되어 마리는 다시 번성했으나,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에 의해 기원전 1761년경 파괴되었다. 이후 마리는 작은 정착지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323~기원전 30년)에 버려지고 잊혀졌다.

발견과 발굴

마리는 1933년 베두인 부족이 텔 하리리에서 머리 없는 조각상을 발견하면서 재발견되었다. 같은 해 12월 14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속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시작했으며, 앙드레 파로(1933~1974), 장-클로드 마르그롱(1979~2004), 파스칼 버터린(2005년~)이 발굴을 주도했다.

발굴을 통해 25,000점 이상의 아카드어 쐐기 문자 점토판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기원전 1800년~기원전 1750년 사이 약 50년간의 기록으로, 당시의 행정, 경제, 사법, 외교 관계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점토판들 중 3,000점 이상이 서신이며, 나머지는 행정·경제·사법 문서이다. 이 기록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크레타에 이르는 광범위한 무역망의 존재를 밝혀냈다.

정치와 사회

마리는 절대 군주제 국가였으며, 왕이 행정 전반을 통제했다. 림 왕조 시대에는 수도 외에 테르카, 사가라툼, 카툰난, 투툴의 4개 주로 나뉘어 있었다. 인구는 최성기 약 40,000명으로 추정된다. 언어는 동셈어(에블라어와 유사)가 사용되었으며, 아모리 시대에는 아카드어가 문서 언어로 남았다. 종교적으로는 수메르 신과 셈족 신을 함께 숭배했으며, 다곤이 최고신, 메르가 수호신이었다.

경제

마리는 농업과 무역에 기반한 경제를 가졌다. 유프라테스 계곡의 관개 농업과 함께, 이란 고원의 금속과 주석, 키프로스의 구리, 아나톨리아의 은, 레바논의 목재, 이집트의 금 등이 거래되는 중계 무역 중심지였다.

현황

시리아 내전(2011년~) 이후 발굴이 중단되었으며, 유적지는 무장 단체의 통제 아래 대규모 약탈을 겪었다. 2015년까지 ISIL(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이 마리 왕궁을 포함한 유적지를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약탈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위성 이미지 분석에 따르면 약탈은 최소 2017년까지 지속되었다. 출토 유물들은 루브르 박물관, 알레포 국립박물관, 다마스쿠스 국립박물관, 데이르에조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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