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 알렉산데르 피흐칼라(핀란드어: Martti Aleksander Pihkala, 1882년 1월 18일~1966년 6월 10일)는 핀란드의 정치인, 교육자, 기업인이다.
피흐칼라는 굼메루스가 출신으로, 탐페레 주교 야코 굼메루스, 체육인 라우리 피흐칼라, 농업경제학자 루리크 피흐칼라와 형제 관계이며, 출판업자 카를레 야코 굼메루스와는 숙질 관계이다. 아들은 농학자 카를로 우올레비 피흐칼라이다.
1903년 이위배스퀼래 교원대학에 다녔으며, 1904년부터 1920년까지 이위배스퀼래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7년에는 동생 라우리 피흐칼라와 함께 엽병 운동에 관여하였고, 중앙수오미 지역 및 남포흐얀마 지역 일대에서 백위대 결성을 선동하였다.
1918년 핀란드 내전에 백군 측으로 참전하였으며, 내전 종전 후 《어떤 핀란드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피흐칼라는 우생학을 주장하며 강제 불임 수술과 우범자의 사회적 격리를 옹호하였다.
내전 이후 공산주의자들의 지하 활동과 파업이 증가하자, 고용주 단체들은 1920년 파업 분쇄를 전문으로 하는 조직인 비엔티라우하 합자회사를 설립하였고, 피흐칼라는 그 사장을 지냈다. 특히 남포흐얀마 지역에서 비엔티라우하의 세력이 강성하였으며, 비흐토리 코솔라 등도 이 조직에서 활동하였다.
피흐칼라는 라푸아 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1930년 가을 국민연합당 소속으로 의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32년 라푸아 운동이 금지되자 그 후신인 애국인민운동(IKL)에 참여하였으나, 1933년 총선에서는 국민연합당과 IKL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낙선하였다. 이후 IKL이 노동자 친화적 움직임을 보이면서 관계가 소원해졌고, 결국 IKL에서 탈당하고 IKL 소속의 코솔라를 비엔티라우하에서 내보냈다.
겨울전쟁 발발 이후 국민 단합을 위해 1940년 핀란드 사용자연합이 1월 약조로 핀란드 노동조합중앙동맹을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면서 비엔티라우하는 활동 기반을 상실하였다. 이후 피흐칼라는 전 대통령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와 함께 당국의 허가 없이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가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핀란드가 끝까지 독일과 함께 싸워야 하며, 소련과 별개의 평화조약을 맺으려는 모든 시도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44년 9월 핀란드가 독일과의 관계를 단절하면서, 당국은 피흐칼라의 책이 평화 협상에 위험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피흐칼라는 가택연금 3년형에 처해져 반타레콜라의 농장에 칩거하였다. 1966년 6월 10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