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기아나(그리스어: Μαργιανή, Margiana; 고대 페르시아어: Marguš)는 아무다리야강(옥수스강) 유역의 무르가브강 계곡 일대에 위치한 고대 역사지역이다. 이 지역의 중심은 오아시스 도시 메르브(Merv)였으며, 오늘날의 투르크메니스탄 남동부를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북부 및 우즈베키스탄 일부에 걸쳐 있었다.
지리적 위치
마르기아나는 서남쪽으로 파르티아, 남쪽으로 아리아, 동쪽으로 박트리아, 북쪽으로 소그디아나와 접하였다. 현대의 행정구역 기준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에 걸쳐 있다.
고대 시대
마르기아나에 관한 아케메네스 제국 이전의 정확한 역사에 대해서는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 지역은 청동기 시대 문명인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 옥수스 문명)의 일부로 간주된다. 일부 학자들은 오아시스 주변에 왕국이 성립되고 도시사회가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다른 학자들은 기원전 7세기경 관개시설이 시작되었으나 그러한 국가의 존재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한다.
아케메네스 제국 시기
마르기아나는 키루스 대왕에 의해 기원전 545년에서 539년 사이에 정복되었으며, 처음에는 박트리아 총독령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기원전 522년, 다리우스 1세가 즉위한 직후 프라다(Frâda)라는 인물이 마르기아나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박트리아 총독 다다르시에 의해 기원전 521년 12월에 신속히 진압되었다. 베히스툰 비석의 아람어 판본에 따르면, 이 반란의 진압 과정에서 55,423명의 마르기아나인들이 사망하고 6,972명이 포로로 잡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다리우스 1세 통치 이후 어느 시점에 마르기아나는 박트리아 총독령에서 분리되어 아리아 총독령에 병합되었다.
헬레니즘 시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29년 박트리아를 침공한 후, 그의 장군 크라테로스가 기원전 328년 마르기아나를 요새화하고 메르브에 주둔지를 설치하였으며, 이 도시를 "알렉산드리아 인 마르기아나"로 재건하였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을 거쳐 마르기아나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기원전 280년경 파르니 유목민이 마르기아나를 침략하여 여러 도시가 파괴되었고, 안티오코스 1세는 알렉산드리아를 둘러싸는 300km가 넘는 성벽을 축조하고 도시를 재건하여 "안티오키아 인 마르기아나"로 개명하였으며, 마르기아나를 별도의 총독령으로 승격시켰다.
파르티아 및 사산 제국 시기
기원전 170년경 파르티아의 미트리다테스 1세가 마르기아나를 정복하였다. 이후 유에지족과 사카족의 이동으로 인한 혼란기와 쿠샨 제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시기를 거쳐, 기원전 115년경 파르티아의 미트리다테스 2세가 동부 지역의 지배권을 회복하였다. 기원후 224년 사산 제국의 아르다시르 1세가 마르기아나를 복속시켰으며, 약 260년경 샤푸르 1세가 공식적으로 병합하였다.
종교적 다양성
마르기아나는 실크로드 상에 위치했기 때문에 이슬람 정복 이전 시기에 다양한 종교 공동체가 공존하였다. 대다수 인구는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했으나, 불교·기독교·마니교·유대교 공동체도 존재하였다. 메르브 시는 불교 학문의 주요 중심지였으며, 기독교 디오세스(교구)가 메르브에 존재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슬람 정복과 쇠퇴
기원후 651년, 사산 제국의 마지막 왕인 야즈데게르드 3세가 이슬람 군대를 피해 마르기아나로 도주하였으나, 결국 옥수스강 전투에서 패배하고 방앗간에서 피신 중 마르기아나인 방앗간 주인에 의해 살해되면서 사산 제국은 멸망하였다. 이후 마르기아나는 라시둔 칼리파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마르기아나는 청동기 시대 문명인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적 복합체(BMAC) 연구와 중앙아시아 고대사 이해에 있어 중요한 지역으로,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의 고대 도시 메르브 유적지를 중심으로 고고학적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