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드 랑발 (Madame de Lamballe)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기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귀족 여성으로, 본명은 마리 테레즈 루이즈 드 사부아-카리냥 (Marie Thérèse Louise de Savoie-Carignan)이다. 1749년 9월 8일 토리노에서 태어나 1792년 9월 3일 파리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생애 및 활동: 이탈리아의 사보이아-카리냥 가문 출신으로, 사르데냐 왕국의 공주였다. 1767년 프랑스 왕가와 인척 관계에 있던 랑발 공작 루이 알렉상드르 드 부르봉과 결혼하여 랑발 공작부인(Princesse de Lamballe)이 되었다. 그녀는 결혼 1년 만에 남편을 잃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이후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왕비의 가장 총애받는 친구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랑발 공작부인의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은 왕비에게 큰 위안이 되었으며, 1776년 마리 앙투아네트의 궁내대신(Superintendent of the Queen's Household)으로 임명되어 왕비의 최측근에서 왕실 살림을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녀는 왕비의 사적인 모임에 항상 동행했으며, 왕비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었다.
프랑스 혁명과 비극적 최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다른 많은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심과 우정 때문에 1792년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는 그녀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혁명의 격동기였던 1792년 8월 10일 튈르리 궁 공격 이후 왕가와 함께 탕플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후 혁명기의 광기로 얼룩진 1792년 9월 학살(September Massacres) 당시 다른 수많은 수감자들과 함께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녀의 시신은 훼손되었고, 그녀의 머리는 창에 꽂혀 마리 앙투아네트가 수감되어 있던 탕플 감옥 창문 앞으로 보여졌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는 혁명의 잔혹성과 개인의 비극을 상징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역사에 남아있다.
역사적 의의: 마담 드 랑발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심과 순수한 우정을 보여준 인물로 기억되며, 동시에 프랑스 혁명의 격랑 속에서 희생된 왕당파 귀족들의 비극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녀의 최후는 혁명의 어두운 단면과 광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