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대학살(영어: Manila Massacre, 필리핀어: Masaker sa Maynila, 일본어: マニラ だいぎゃくさつ)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5년 2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일본군이 필리핀 민간인에게 자행한 약탈, 강간 및 학살 사건을 가리킨다. '마닐라의 강간(Rape of Manila)'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은 미군이 필리핀 탈환을 위해 마닐라에 진입하면서 벌어진 마닐라 전투(1945년 2월 3일~3월 3일) 기간 중에 발생하였다. 당시 마닐라에는 약 70만 명의 시민이 남아 있었으며, 일본군은 이들이 미군에 협력할 것을 우려하여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과 약탈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성 파울로 대학에서는 어린이를 포함한 약 994명이 살해되었고, 북부 묘지에서는 약 2,000명이 처형되었으며, 산차고 감옥에서도 집단 살해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구체적인 살해 증거는 도쿄 국제 전범 재판에서 보고되었다.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학살 및 전투 전반을 포함한 필리핀 민간인 사망자는 약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마닐라 인구의 상당수에 해당하는 규모로, 필리핀 역사상 최악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다. 전투에서는 미군 약 1,000명과 일본군 약 16,000명도 전사하였다.
전후 이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일본군 사령관이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대장이 마닐라 군사재판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다만 야마시타는 전투 전에 마닐라를 포기하고 사령부를 바기오로 옮겼으며, 이와부치 산지(岩淵三次) 해군 소장이 지휘하는 잔존 부대가 마닐라에 남아 저항하면서 학살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난징 대학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으나,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이 저지른 주요 전쟁 범죄 가운데 하나로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