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아사냐(Manuel Azaña)
마누엘 아사냐 디아스(스페인어: Manuel Azaña Díaz, 1880년 1월 10일 ~ 1940년 1월 8일)는 스페인의 정치인, 작가, 지식인으로, 스페인 제2공화국 시기 총리(1931~1933, 1936)와 대통령(1936~1939)을 역임한 인물이다.
생애
초기 경력
아사냐는 1880년 1월 10일 스페인 마드리드 지방의 알칼라데에나레스(Alcalá de Henares)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었다. 마드리드 국립대학교와 알칼라 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897년 사라고사 대학교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1900년 마드리드 국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11년 법무성 등기소에 취직하였다.
1914년 개혁공화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하였다. 1918년과 1923년 톨레도 지방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25년에는 "행동하는 공화당"(Acción Republicana)을 창당하였다. 한편 1920년대부터 정치·법률 분야의 저작을 다수 출간하였고, 정치 잡지 《라 플루마》(La Pluma)의 발행인을 겸하였다. 1924년 동 잡지의 출간이 금지되자 소설 창작으로 전환하였으며, 1926년 국가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의 군부 독재 시기였던 1924년, 아사냐는 독재 체제와 알폰소 13세의 왕정에 반대하는 공개 성명을 발표하였다. 1930년에는 공화국 수립을 주도한 《산 세바스티안 협정》에 참여하였다.
제2공화국과 총리 재임
1930년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가 사임한 후, 스페인은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1931년 4월 12일 실시된 지방 선거에서 공화파가 압도적 승리를 거두자, 4월 14일 알폰소 13세는 망명길에 올랐고 스페인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니세토 알칼라사모라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며, 아사냐는 초대 국방부 장관에 이어 1931년 10월 31일 총리로 임명되었다.
총리 재임 기간(1931~1933) 동안 아사냐는 신헌법의 진보적 조항들을 시행하며, 성직자의 특권을 제한하고 세속 교육을 확립하는 등 일련의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보수 세력 및 가톨릭 교회와의 첨예한 갈등을 초래하였다.
대통령 재임과 스페인 내전
1936년 2월 총선에서 좌파 연합인 인민전선(Frente Popular)이 승리한 후, 아사냐는 다시 총리직에 올랐다. 같은 해 5월, 니세토 알칼라사모라 대통령이 탄핵된 뒤 아사냐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36년 5월 31일 취임하였다.
그러나 1936년 7월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비롯한 군부 세력의 쿠데타로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였다. 아사냐는 공화국 정부의 수반으로서 내전 기간 동안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정부 내 분열과 전황 악화 속에서 실질적 권한은 제한적이었다.
말년과 망명
1939년 초, 프랑코의 국민군이 카탈루냐 지방과 바르셀로나를 점령하자, 아사냐는 1939년 1월 1일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이후 비시 프랑스 치하의 몽토방(Montauban)에 머물렀으며, 1940년 1월 8일 그곳에서 5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평가
마누엘 아사냐는 스페인 제2공화국의 핵심적 정치 지도자로서, 군주제 폐지와 공화정 수립, 그리고 진보적 개혁을 추진한 인물로 평가된다. 동시에 스페인 내전이라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 공화국 정부의 수반으로서 망명과 죽음을 맞이한, 스페인 현대사의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