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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다 폰 돌케

마그다 폰 돌케(Magda von Dolcke, 본명: Caroline Christine Magdalene von Dolcke, 1838년 2월 28일 ~ 1926년 10월 22일)는 덴마크의 무대 배우이자 유랑 극단의 감독이다. 덴마크에서는 로잘린데 톰센(Rosalinde Thomsen)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으며, 주로 덴마크와 스웨덴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생애 및 경력

마그다 폰 돌케는 덴마크 오벤로(Aabenraa)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홀슈타인 공국(Duchy of Holstein)의 헤밍슈테트(Hemmingstedt)로 이주했다. 1859년 11월 20일, 덴마크 왕립극장(Royal Danish Theatre)에서 요한네 역으로 데뷔하며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독일식 성씨와 억양을 숨기고 덴마크인으로 인정받고자 로잘린데 톰센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1862-63년 시즌이 끝난 후 왕립극장을 떠나 베를린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연기 수련을 떠났다. 1868년 코펜하겐의 폴케테아트레트(Folketeatret)에서 공연을 재개했으며, 《제인 에어》의 주연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자신의 유랑 극단을 이끌며 순회 공연을 다녔다.

18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왕립극장(Royal Dramatic Theatre)에 초청받아 게스트 배우로 활동했다. 1874년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가 제작한 《오를레앙의 처녀》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후 민드레 테아테른(Mindre teatern, 1874), 유르고르드스테아테른(Djurgårdsteatern)과 폴케테아트레트(1876) 등에서 활동했다. 1874년부터는 자신의 극단을 이끌고 스웨덴 각지를 순회했으며, 이 극단에서 알베르트 란프트(Albert Ranft)가 데뷔하기도 했다.

1880년대 코펜하겐에서 공장장 존 보세(John Bosse)와 결혼한 후 무대와 공적 생활에서 은퇴했다. 1926년 10월 22일 덴마크 로스킬레에서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주요 관계

마그다 폰 돌케는 당대 저명 인사들과의 관계로 널리 알려졌다. 1860년 노르웨이의 극작가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Bjørnstjerne Bjørnson)과의 관계가 코펜하겐에서 공공연히 알려졌으며, 비에른손은 이 관계를 "영혼과의 계약(Pagt med en Sjel)"이라고 묘사했다. 1874년에는 스웨덴의 오스카르 2세 국왕(King Oscar II)과 관계를 맺었는데, 이 기간 동안 왕비 나소의 소피아는 공식적으로 건강상의 이유로 독일로 떠났다. 이로 인해 프리츠 폰 다르델(Fritz von Dardel)은 그녀를 "군주와의 불륜 덕분에 왕실 극장에 자리를 얻은 아름답지만 재능 없는 모험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연기 방식을 높이 평가했다.

평가

마그다 폰 돌케는 상당한 재능을 지닌 무대 예술가로 평가되었으나, 사적으로는 다소 파격적인 면이 있어 왕실 무대에서 더 이상 활동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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