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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건충

마건충(馬建忠, 1845년 2월 9일~1900년 8월 14일)은 청나라 말기의 사상가, 외교관, 정치가, 언어학자이다. 자는 미숙(眉叔)이며, 장쑤성(江蘇省) 전장(鎭江) 출신으로, 청나라 말기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추진한 관료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생애

마건충은 가톨릭(천주교)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둘째 형 마건훈(馬建勛)은 이홍장(李鴻章)의 막료로 활동하였고, 넷째 형 마상백(馬相伯)은 중국의 진단대학(震旦大學)과 복단대학(復旦大學)의 설립자로 알려져 있다.

마건충은 유년 시절 과거 급제를 목표로 사서오경을 공부했으나, 1853년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이 발발하면서 가족과 함께 상하이(上海)로 피난하였다. 상하이에서 예수회가 설립한 서회공학(徐匯公學)에 입학하여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을 학습하였다. 제2차 아편전쟁 이후 서양 학문 수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그리스어를 지속적으로 공부하였다.

1870년 둘째 형의 소개로 이홍장의 막료가 되었다. 1876년에는 이홍장의 지시로 프랑스에 파견되어 국제법을 공부하였고, 동시에 프랑스 주재 청국 공사 곽숭도(郭嵩燾)의 통역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파리 정치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1880년 귀국한 뒤에는 이홍장 휘하에서 양무운동의 실무 관료로 활동하였다. 1881년에는 아편 전매와 세수 문제 해결을 위해 인도 제국에 파견되었다.

조선과의 관계

1882년 마건충은 이홍장의 명령으로 조선에 파견되어 조선과 영국, 미국, 독일 간의 통상조약, 그중에서도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체결을 추진하였다. 그는 조선 정부가 서구 각국과 수교 통상할 것을 권하는 취지의 문서인 「대의조선여각국통상약장절략(代擬朝鮮與各國通商約章節略)」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조선에서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발하자 마건충은 청군과 함께 다시 조선에 건너와, 군란의 주도자로 지목된 흥선대원군을 청나라로 납치·연행하는 데 관여하였다. 또한 청나라의 청룡기(靑龍旗)를 모방한 황룡기 도안을 고종에게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학문과 사상

마건충은 서양과 같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구의 과학기술과 제도를 수용해야 한다고 보고, 통행세 폐지, 관세자주권 회복, 대외 무역 확대, 민간 산업 진흥, 의회 제도 채택 등을 주장하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외국의 과학·문화 지식을 흡수할 수 있도록 번역 서원 개설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언어학자로서 그는 중국 고문(古文)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양 문법 체계를 참고한 중국 최초의 근대적 문법서인 『마씨문통(馬氏文通)』(1898년 간행)을 저술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그의 형 마상백이 이 저서의 저술에 관여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주요 저서

  • 『적가재기언기행(適可齋記言記行)』
  • 『마씨문통(馬氏文通)』(일명 『문통』)
  • 『감려순기(勘旅順記)』

사망

1895년 청일전쟁의 강화조약 체결을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이홍장을 보좌한 이후, 1900년 의화단 운동 시기 이홍장에게 다시 소환되었다가 같은 해 사망하였다.

참고

마건충은 청나라 말기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 특히 조선과 서구 열강 간의 통상조약 체결에 실질적으로 관여한 인물로, 한국 근대 외교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다루어진다. 그의 『동행록(東行錄)』 계열 기록은 근대 한중 관계사 연구의 주요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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