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앨리스 머리(Margaret Alice Murray, 1863년 7월 13일 ~ 1963년 11월 13일)는 영국계 인도인 출신의 이집트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가이자 민속학자이다.
생애 및 학문적 배경
머리는 영국령 인도 캘커타(현재의 콜카타)에서 부유한 중산층 영국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을 인도, 영국, 독일 등지에서 보냈으며,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로 훈련받았다. 1894년 30세의 나이로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UCL)에서 이집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학과장이었던 플린더스 페트리(Flinders Petrie)의 조수로 활동했다. 1898년 UCL의 하급 강사로 임용되어 영국 최초의 여성 고고학 강사가 되었다.
1902~1903년에는 이집트 아비도스(Abydos)에서 페트리의 발굴 작업에 참여하여 오시레이온(Osireion) 신전을 발견했고, 다음 시즌에는 사카라(Saqqara) 묘지를 조사하여 이집트학자로서의 명성을 확립했다. 1908년 맨체스터 박물관에서 두 형제의 무덤(Tomb of the Two Brothers)에서 발견된 미라 중 하나인 크눔-나크트(Khnum-nakht)의 공개 미라 풀기(unwrapping)를 주도했는데, 이는 여성이 공개적으로 미라 풀기를 진행한 최초의 사례였다.
머리는 제1차 페미니스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여성사회정치연합(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에 가입했고, UCL 내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1927년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28년 조교수로 승진했으며, 1935년 UCL에서 은퇴했다. 이후에도 팔레스타인, 페트라(요르단) 등지에서 발굴 작업을 계속했으며, 1953년부터 1955년까지 민속학회(Folklore Society) 회장을 역임했다. 1963년 10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주요 학문적 기여 및 논란
머리의 이집트학 및 고고학 분야 업적은 널리 인정받아 "이집트학의 대모(Grand Old Woman of Egyptology)"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의 민속학 및 마녀술 역사 연구는 학계에서 심각한 비판을 받았다.
머리는 1921년 저서 《서유럽의 마녀 숭배(The Witch-Cult in Western Europe)》에서 이른바 '마녀 숭배 가설(witch-cult hypothesis)'을 제시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근대 초기 유럽의 마녀 재판은 기독교 이전의 이교도 종교(뿔 달린 신(Horned God)을 숭배하는 다산 숭배)를 근절하려는 시도였으며, 마녀로 고발된 사람들은 실제로 이러한 고대 종교의 신자들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이론은 학계에서 완전히 반증되었으며, 머리의 방법론은 심각한 오류와 비논리적 추론에 기반한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학자 노먼 콘(Norman Cohn)은 머리의 "유럽 역사에 대한 지식은 피상적이었고 역사적 방법에 대한 이해는 전무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머리의 마녀 숭배 가설은 대중적 관심을 크게 끌었으며, 위카(Wicca)라는 현대 신이교주의 종교 운동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머리는 "위카의 할머니(Grandmother of Wicca)"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이 가설은 H. P. 러브크래프트, 올더스 헉슬리, 로버트 그레이브스 등 여러 문학가의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요 저서
- 《서유럽의 마녀 숭배》(The Witch-Cult in Western Europe, 1921)
- 《마녀들의 신》(The God of the Witches, 1931)
- 《이집트의 영광》(The Splendour That Was Egypt, 1949)
- 《잉글랜드의 신성한 왕》(The Divine King in England, 1954)
- 《나의 첫 백 년》(My First Hundred Years, 1963, 자서전)
평가
머리는 이집트학과 고고학 분야에서 여성 학자의 선구자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민속학 및 마녀사 연구에서의 그녀의 이론은 학문적으로 완전히 폐기되었으며, 현대 학계에서는 방법론적 오류와 증거의 왜곡에 기반한 것으로 간주된다. 머리의 사례는 한 학자가 한 분야에서는 탁월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다른 분야에서 비과학적 이론을 주장함으로써 학문적 논란의 대상이 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