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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해전

마강해전(馬江海戰)은 1884년 8월 23일부터 8월 26일까지 청나라 푸젠성 푸저우(福州) 마미항(馬尾港)에서 벌어진 해전으로, 청불전쟁(청프전쟁, Sino-French War)의 서전(序幕)에 해당하는 전투이다. 프랑스어로는 Combat naval de Fou-Tchéou, 영어로는 Battle of Fuzhou 또는 Battle of the Pagoda Anchorage로 불리며, 마미해전(馬尾海戰)이라고도 한다.

배경

1880년대 초반, 베트남 진출을 목표로 한 프랑스와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청나라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1884년 5월 11일, 청나라의 온건파 이홍장(李鴻章)은 프랑스와 톈진 협약(리-푸르니에 협약)을 체결하여 청나라군의 철수와 통킹 지역의 무역로 확정 등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협약 조항 해석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이와 청나라 내 주전파의 반발로 갈등이 재점화되었고, 박러 전투(Bắc Lệ 매복)에서 프랑스군이 청나라군에 패배하면서 프랑스 내에서도 개전론이 힘을 얻었다.

전투 경과

1884년 7월 12일, 프랑스 함대 8척이 복주 근해 신성탑(羅星塔)에 정박하여 민강(閩江)을 봉쇄하였다. 청나라의 복건수사(福建水師)는 마미항에 양무(揚武), 복파(伏波) 등 13척의 군함을 대기시켰으나, 복주 선정대신 하여장(何如璋)과 복건 군무회판 장패륜(張佩綸)은 개전을 회피하려 하였고 함대는 수비만 강화한 채 적극적인 공격을 하지 않았다.

8월 중순 평화 회담이 결렬되었고, 8월 22일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아메데 쿠르베(Amédée Courbet) 제독은 복주선정국(福州船政局) 파괴와 마미항 및 복건수사 격파 명령을 받았다. 쿠르베는 다음 날 청나라 측 민절총독(閩浙總督)과 중립국 군함 사령관에게 공격을 통보하였다.

1884년 8월 23일, 프랑스 함대는 청나라 복건함대를 기습 공격하였다. 프랑스군은 전함 8척(중포 77문, 병력 약 1,800명, 어뢰정 2척, 지원 군함 2척)을 투입한 반면, 청나라군은 서양식 전함 11척(중포 245문, 병력 약 5,100명)과 정크선 및 어선 수십 척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병력의 숙련도와 무기 장비 성능에서 프랑스군이 월등히 우세하였다.

결과

전투는 프랑스군의 결정적 승리로 끝났다. 프랑스군의 피해는 사망 12명, 부상 15명, 전함 4척 부분 파손에 그친 반면, 청나라군은 사망 약 1,796명, 부상 약 3,000명, 전함 19척 침몰, 30척 이상이 파손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청나라의 복건수사와 복주선정국(조선소)은 사실상 괴멸되었다.

의의

마강해전은 청나라 해군의 근대화 노력에 큰 타격을 입힌 전투로 평가된다. 또한 프랑스가 국제법상의 절차를 무시한 기습 공격을 감행한 사례로, 이후 해양 국제법 분쟁에서 자주 인용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 전투는 청불전쟁(1884년 8월 ~ 1885년 4월)의 시작을 알렸으며, 이후 프랑스는 해상에서 우위를 점하며 전쟁을 주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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