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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마를렌

릴리 마를렌(Lili Marleen, 독일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지중해 전역에서 추축군과 연합군 양측 병사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독일의 사랑 노래이다. 1915년 시(詩)로 쓰였고, 1938년에 곡이 붙여졌으며, 1939년 랄레 안데르센(Lale Andersen)이 처음으로 녹음하였다.

기원 및 창작 배경

가사는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징집된 함부르크 출신의 교사이자 시인인 한스 라이프(Hans Leip, 1893~1983)가 썼다. 라이프는 친구의 여자친구 애칭인 '릴리(Lili)'와 간호사였던 다른 친구의 이름 '마를렌(Marleen)'을 결합하여 시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1937년 '초병의 노래(Das Lied eines jungen Soldaten auf der Wacht)'라는 제목으로 시집에 수록되었고, 1938년 노르베르트 슐체(Norbert Schultze)가 곡을 붙였다.

초기 녹음 및 확산

1939년 랄레 안데르센이 처음 녹음하였으나 초기에는 약 700장만 판매될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다. 1941년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를 점령한 후, 독일군 방송국(Wehrmachtssender Belgrad)이 운영되면서 음반 부족으로 이 곡을 자주 방송하게 되었다. 방송 출력이 매우 강력하여 북아프리카 전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수신이 가능했고, 독일군뿐 아니라 영연방군 병사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금지와 부활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는 가수 랄레 안데르센이 반나치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1942년 이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안데르센의 활동을 제한하였다. 그러나 병사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중립국 스위스에서도 방송이 계속되자 결국 금지령이 해제되었고, 이후 매일 오후 9시 55분경 정규 방송되었다.

영문 버전 및 마를레네 디트리히

영어 가사는 토미 코너(Tommy Connor)와 J.J. 필립스 등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가로등 아래의 나의 릴리(My Lili of the Lamplight)'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독일 태생의 여배우이자 가수인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는 반나치 신념으로 미국에 망명한 후, 1944년 미군 OSS(전략사무국)의 선무 방송 프로젝트를 위해 이 곡을 녹음하였고, 이후 미군 위문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영향 및 유산

이 노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아군과 적군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 병사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전투 중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일시적으로 교전이 중단되었다는 일화가 여러 차례 전해진다. 영국 육군 특수부대 SAS(Special Air Service)의 행진곡으로도 사용되었으며,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불렸다. 1981년에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 감독이 동명의 영화 《Lili Marleen》을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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