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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역사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고대 발트족의 정착에서부터 중세 대공국의 융성,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기, 러시아 제국의 지배, 20세기 독립과 소련 점령, 그리고 현대의 독립 재건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과정을 포함한다.

고대 및 중세 초기

리투아니아인은 인도유럽어족 발트어파에 속하는 민족으로, 고대부터 발트해 연안의 늪지대에 정착하여 살았다. 다른 유럽 민족들과 달리 민족 대이동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14세기까지 고유의 발트 다신교(최고신 페르쿠나스)를 신앙하였다. 12세기까지는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통일되지 않은 상태였다.

리투아니아 대공국

1236년 민다우가스(Mindaugas)가 리투아니아 부족을 통일하였고, 1253년 7월 6일 가톨릭으로 개종하며 교황으로부터 왕관을 받아 리투아니아 왕국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1263년 민다우가스가 암살된 후 혼란기를 거쳐, 게디미나스(Gediminas) 왕조 아래에서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동쪽으로 루테니아(오늘날의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1362년 알기르다스(Algirdas) 대공이 시니 보디 전투에서 킵차크 칸국의 타타르군을 격파하면서 흑해 연안까지 영토를 넓혔다. 14세기 후반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유럽에서 가장 영토가 넓은 국가 중 하나였다.

1385년 크레보 연합을 통해 리투아니아 대공 요가일라(Jogaila)가 폴란드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하면서 폴란드와 동군연합을 형성하였고, 요가일라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리투아니아의 기독교화를 추진하였다. 비타우타스(Vytautas) 대공 치세(1392~1430)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전성기로, 1410년 그룬발트(잘기리스) 전투에서 튜튼 기사단을 결정적으로 격파하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1569년 루블린 조약을 통해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폴란드 왕국은 하나의 연방 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두 민족의 공화국)으로 통합되었다. 이 연방은 16~17세기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와 인구를 가진 국가 중 하나였으며, 귀족 민주주의 체제(황금의 자유)와 상대적인 종교적 관용으로 특징지어졌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대홍수(코사크 봉기, 스웨덴 침공, 러시아의 침략) 이후 연방은 점차 쇠퇴하였다. 내부 귀족 분쟁, 리베룸 베토(자유 거부권)로 인한 정치적 마비, 주변 강대국의 간섭이 심화되었다.

러시아 제국 지배기

1795년 제3차 폴란드 분할로 리투아니아 대부분의 영토가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1795년, 1830년(11월 봉기), 1863년(1월 봉기) 등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리투아니아어 출판을 금지하는 등 러시아화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리투아니아 민족 의식의 성장을 촉발하였다. 19세기 말 리투아니아 민족 부흥 운동이 전개되었고, 리투아니아어 정서법이 확립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독립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 제국이 리투아니아를 점령하였다. 1918년 2월 16일 리투아니아 평의회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독일은 리투아니아 왕국(1918년)을 괴뢰국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독일의 패전으로 무산되었고, 리투아니아는 공화국으로 출발하였다.

1918~1920년 리투아니아 독립 전쟁에서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 러시아, 베르몬트군(서러시아 의용군), 폴란드와 동시에 전쟁을 치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 결과 수도 빌뉴스는 폴란드에 병합되었고(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을 거쳐), 리투아니아는 카우나스를 임시 수도로 삼았다. 1926년 안타나스 스메토나의 군부 독재 정권이 수립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소련 점령

1939년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의 비밀 의정서에 따라 리투아니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배정되었다. 1940년 6월 소련군이 리투아니아를 점령하였고,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 국제 사회는 이 병합을 불법으로 간주하였다.

1941년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리투아니아는 독일군에 점령되었다. 이 시기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약 20만 명(전쟁 전 유대인 인구의 약 91%)이 학살되었다. 1944년 소련군이 리투아니아를 재점령하였고, 소련에 대항한 리투아니아 게릴라(숲의 형제들)는 1950년대 초까지 저항을 계속하였다. 소련 당국은 수만 명의 리투아니아인을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독립 회복과 현대

1980년대 후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 속에서 리투아니아의 독립 운동이 재개되었다. 1989년 발트 3국은 약 600km에 걸친 인간 띠 '발트의 길' 시위를 벌였다. 1990년 3월 11일 리투아니아는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1년 1월 소련군이 빌뉴스를 침공하여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나(1월 사건), 같은 해 8월 소련 쿠데타 실패 이후 리투아니아의 독립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1991년 9월 유엔에 가입하였고, 2004년 유럽 연합(EU)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하였다. 현재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국가로, EU 및 NATO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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