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위드마크(Richard Widmark, 1914년 12월 24일 – 2008년 3월 24일)는 미국의 영화·무대 배우이자 제작자이다. 그는 194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할리우드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냉혹하고 복잡한 악역을 연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요 연혁
| 연도 | 주요 사건 |
|---|---|
| 1914 | 미국 일리노이주 레이놀즈에서 출생 |
| 1930‑1939 | 라디오와 무대에서 연기 활동 시작 |
| 1947 | 영화 《히트·아웃》(Kiss of Death)에서 처음으로 악역인 마이클 그루터를 연기,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 지명 |
| 1950‑1960 | 《런키 프라다(무시무시한 남자)》, 《가시리비 지 브린(어린이의 성폭력)》 등 다수의 블랙코미디·스릴러에서 주연 |
| 1976 | 《에일린·그레이스·터라스: 세미쉐르 역(소설)》의 영화화에 제작자로 참여 |
| 2008 |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 (연령 93세) |
대표 작품
- 《히트·아웃》(Kiss of Death, 1947) – 악역 마이클 그루터
- 《빅 오프닝》(The Big Sleep, 1946) – 조연 출연
- 《대세스와 버터리》(The Haunting, 1963) – 주연
- 《거미의 섬》(The Bridge at Remagen, 1969) – 군 장교 역
수상·수상 경력
-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 (1948년, 《히트·아웃》)
-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 (1950년대 여러 차례)
- 데이비드 호프너 위원회 명예상 (1999년, 영화 예술 기여)
개인 생활
- 1955년 배우 올리비아 레이스와 결혼해 2005년 사망할 때까지 동거하였다.
- 두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은퇴 후에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조용히 생활했다.
평가
리처드 위드마크는 초기 할리우드 영화에서 악역을 인간적으로 묘사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연기는 강렬한 눈빛과 카리스마 있는 제스처로 특징지어지며, 이후 많은 배우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20세기 중반 미국 영화 산업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