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오코너(Richard O'Connor, 본명: 리처드 뉴전트 오코너 경, Sir Richard Nugent O'Connor)는 1889년 8월 21일부터 1981년 6월 17일까지 생존한 영국의 군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영국 육군의 상급 장교이다. 최종 계급은 대장(General)이었다.
생애 초반
리처드 오코너는 1889년 8월 21일, 영국령 인도 카슈미르 지역의 스리나가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모리스 오코너는 영국 왕립 아일랜드 소총 연대(Royal Irish Fusiliers)의 소령이었고, 어머니 릴리안 모리스는 인도 중부 주(州) 전 총독의 딸이었다. 영국으로 건너가 토니지 캐슬 학교와 크로손의 타워스 학교를 거쳐 1903년 웰링턴 칼리지에 입학했다. 이후 1908년 샌드허스트 왕립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09년 카메로니언(스코티시 라이플스) 연대에 소위로 임관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오코너는 서부 전선에서 신호 장교 및 참모로 복무했으며, 1915년 2월 무공훈장(Military Cross)을 수여받았다. 1917년에는 특별 공로 훈장(DSO)을 받았고, 같은 해 11월 이탈리아 전선의 피아베 강 전투에 참전하여 이탈리아 은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전간기
전쟁 후 오코너는 1920년 캠벌리 참모대학(Staff College, Camberley)에서 수학했다. 이후 1921년부터 1924년까지 J.F.C. 풀러가 지휘하는 실험 여단에서 참모로 복무하며 전차와 항공기를 보병 및 포병과 협동시키는 전술 연구에 참여했다. 1930년대에는 이집트와 인도에서 복무했고, 1938년 소장으로 승진하여 팔레스타인 주둔 제7보병사단장 겸 예루살렘 군정관을 역임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컴파스 작전
1940년 6월 이탈리아가 영국에 선전 포고한 이후, 오코너는 서부 사막군(Western Desert Force)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40년 12월 8일 시작된 컴파스 작전(Operation Compass)에서 오코너는 약 31,000명의 병력, 275대의 전차로 수적으로 우세한 이탈리아 군대를 격파하였다. 작전은 약 2개월 동안 지속되었으며, 이탈리아 제10군 전체를 괴멸시키고 130,000명 이상의 포로와 400대의 전차, 1,292문의 포를 노획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 작전으로 연합군은 약 800마일(1,300km)을 진격했으며, 오코너는 이를 계기로 기사 작위(Knight 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ath)를 받았다.
포로 수용과 탈출
1941년 3월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아프리카 군단이 북아프리카에 도착하면서 전세가 반전되었다. 1941년 4월 6일, 오코너는 필립 님 중장과 함께 독일 순찰대에 의해 포로로 잡혔다. 이후 이탈리아 피렌체 인근의 빈칠리아타 성(Castello di Vincigliata)에 수감되었으며,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했다.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항복한 후 이탈리아 저항 세력의 도움으로 최종 탈출에 성공하여 연합군 지역으로 복귀하였다.
노르망디 전역과 말년
1944년 1월 오코너는 제8군단(VIII Corps)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노르망디 상륙 작전(Operation Overlord)에 참전했다. 그는 엡섬 작전(Operation Epsom), 굿우드 작전(Operation Goodwood), 블루코트 작전(Operation Bluecoat) 등을 지휘했다. 같은 해 11월 인도 동부 사령부로 전출되었고, 1945년 인도 북부 사령관으로 승진했다. 전후에는 1946년부터 1947년까지 영국 육군 부관총감(Adjutant-General to the Forces)을 역임했다.
1948년 58세의 나이로 은퇴한 후에도 스코틀랜드 육군 사관생도대 사령관, 로스앤크로마티 주지사(Lord Lieutenant) 등 여러 직책을 맡았다. 1971년에는 시슬 훈장(Knight of the Order of the Thistle)을 받았다. 1981년 6월 17일 런던에서 9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평가
오코너는 컴파스 작전의 승리를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연합군의 최초 대규모 전략적 승리를 이끌어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북아프리카 전역에서의 활약은 이후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 파견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영국 다큐멘터리 시리즈 《The World at War》의 북아프리카 편에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