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야 안드레예브나 루슬라노바(러시아어: Лидия Андреевна Русланова, 1900년 10월 27일 ~ 1973년 9월 21일)는 소비에트 연방의 러시아 포크 음악 가수이다.
생애 및 배경
본명은 프라스코비야 안드리아노브나 레이키나-고르셰니나(Прасковья Андриановна Лейкина-Горшенина)이며, 러시아 제국 사라토프현 체르나프카 마을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모르드빈계 가문 출신으로, 일부 자료는 어머니가 에르자인(Erzya)이었다고 전한다. 다섯 살 때 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아원에서 성장했으며, 교구 합창단에서 노래를 시작하여 곧 솔리스트가 되었다. 사라토프 음악원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으나 학문적인 교육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음악 경력
16세 때 군인들 앞에서 첫 콘서트를 가졌고, 러시아 내전 시기부터 군인들을 위한 공연을 시작했다. 1923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프로 가수로 정식 데뷔하였다. 그녀는 독특한 음색과 창법으로 주목받았으며, 이는 여성 솔리스트가 축제 때 공연하던 옛 전통을 부활시킨 형태였다.
1930년대에 이르러 루슬라노바는 소비에트 연방 전역에서 매우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1933년에는 국가 음악·버라이어티·서커스 기업 협회의 예술가가 되어 전국을 순회 공연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제2차 세계 대전(소련에서는 '대조국전쟁'이라 칭함) 발발 후 그녀는 전선을 끊임없이 순회하며 병사들에게 애국적인 노래를 불러 사기를 북돋았다. 그녀의 대표곡으로는 <Valenki(발렌키)>와 <Katyusha(카츄샤)>가 있다. 베를린 전투 당시에는 불타는 독일 국회의사당 계단 위에서 공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2년에는 카츄샤 로켓포 두 개 포대의 건설 비용을 직접 지원하여 붉은 군대에 전달했으며, 같은 해 RSFSR(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정치적 탄압과 수용소 생활
1948년,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와의 연루로 인해 루슬라노바의 남편이자 소비에트 연방 영웅인 블라디미르 크류코프 중장이 체포되었고, 2년 후 그녀도 체포되었다. 그녀는 남편의 반역죄를 인정하는 진술서 서명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하였고, 이로 인해 10년 노동 수용소형을 선고받았다. 수용소에서도 그녀는 수감자들과 관리들 모두에게 존경받는 존재가 되었으나, 이후 블라디미르 중앙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스탈린 사후인 1953년 8월 4일 석방되었으며, 당시 그녀는 몸이 야윈 데다 백발이 되었고 걷기도 어려운 상태였으나 석방 직후 거의 바로 무대에 복귀하였다.
사망과 사후
1973년 9월 21일 모스크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향년 72세였다. 노보데비치 묘지에 남편 옆에 안장되었으며, 장례식 당시 수많은 추모 인파로 인해 묘지 인근 교통이 일시 중단되기도 하였다. 금성의 루슬라노바 크레이터(Ruslanova crater)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