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니츠 전투 (1760년)(독일어: Schlacht bei Liegnitz, 1760)는 7년 전쟁 중인 1760년 8월 15일,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사이에 현재의 폴란드 레그니차(Legnica, 당시 독일명 리기니츠 Liegnitz) 근처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끄는 프로이센군이 에른스트 기데온 폰 라우돈(Ernst Gideon von Laudon) 남작이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수적으로 열세였던 프로이센군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승리를 거두어 동맹군(오스트리아-러시아)의 합류를 저지하고 프로이센의 전세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배경
7년 전쟁은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 등 강력한 동맹국들에 맞서 고립된 싸움을 벌이던 시기였다. 1760년 여름, 프리드리히 대왕은 브레슬라우(Breslau, 현 브로츠와프)에 대한 오스트리아군의 압박을 완화하고, 동시에 라우돈과 레오폴트 폰 다운(Leopold von Daun) 원수가 이끄는 오스트리아군과 차르니셰프(Chernyshev)가 이끄는 러시아군이 합류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라우돈은 프리드리히의 주력을 포위하여 섬멸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다운 원수의 주력군과 합류하여 프로이센군을 협공하려 했다. 프리드리히는 이를 간파하고 리기니츠(Liegnitz) 근처의 방어에 유리한 지형으로 이동하여 오스트리아군의 기습을 피하려 했다.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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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왕국:
- 지휘관: 프리드리히 2세 (프리드리히 대왕)
- 병력: 약 30,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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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국:
- 지휘관: 에른스트 기데온 폰 라우돈 남작
- 병력: 약 35,000명 ~ 40,000명 (다운 원수의 주력군 별도)
전투 경과
라우돈은 밤사이 프로이센군을 기습하여 새벽에 공격할 계획이었으나, 프리드리히는 이를 예견하고 8월 14일 밤 병력을 야간 행군시켜 리기니츠 동쪽의 험준한 코더 바흐(Koder Bach) 강변의 고지대인 베르크베르크(Bergberg) 언덕에 방어 진지를 구축했다.
8월 15일 새벽, 라우돈의 선봉대가 프로이센군의 새로운 진지를 발견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오스트리아군은 프로이센의 포병대와 잘 훈련된 보병대의 저항에 부딪혔다. 프리드리히는 병력을 신속하게 재배치하여 라우돈의 좌익을 측면 공격했으며, 프로이센군의 우수한 포병 운용이 오스트리아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한편, 다운 원수의 주력군은 연기가 자욱한 전장을 보고 프로이센군이 후퇴하는 것으로 오인하거나, 라우돈의 요청을 뒤늦게 받아들이면서 전투에 제때 합류하지 못했다. 수시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라우돈의 오스트리아군은 큰 손실을 입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 및 영향
- 결과: 프로이센의 결정적인 승리
- 사상자:
- 프로이센: 약 2,000명 (전사, 부상, 실종)
- 오스트리아: 약 8,000명 (전사, 부상, 포로) 이상으로 추정
리그니츠 전투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탁월한 전술적 재능과 신속한 판단력을 다시 한번 입증한 전투이다. 이 승리로 프리드리히는 동맹군(오스트리아-러시아)의 포위와 합류를 저지하여 프로이센군이 전멸하는 것을 막았다. 이 전투는 프로이센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7년 전쟁의 어려운 시기에도 프로이센이 계속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비록 7년 전쟁의 최종 결과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당시 프로이센의 생존에 중요한 기여를 한 전략적 승리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