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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내전

르완다 내전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르완다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로, 후투족 주도의 르완다 정부군과 투치족 주도의 르완다 애국전선(RPF) 사이에서 전개되었다. 이 내전은 1994년 르완다 집단학살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으며, RPF의 군사적 승리로 종결되었다.

배경 르완다는 벨기에 식민 통치 시기(1916~1962) 동안 투치족 소수 지배층과 후투족 다수 피지배층 간의 인종 구분이 제도화되었으며, 독립 이후 후투족 정권 수립 과정에서 다수의 투치족이 인접국(우간다, 부룬디, 탄자니아, 자이르 등)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투치족 사회에서 결성된 르완다 애국전선(RPF)은 1990년 10월 1일 우간다 국경을 넘어 르완다 북부를 침공하며 내전의 막을 올렸다.

전개 과정

  • 초기 공세 및 교착 (1990~1993): RPF의 초기 공세는 르완다 정부군과 프랑스, 벨기에, 자이르의 군사 개입으로 저지되었다. 이후 게릴라전 양상으로 전개되다가 1992년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 아루샤 협정 (1993): 1993년 8월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르완다 정부와 RPF 사이에 권력 분점, 난민 귀환, 군대 통합 등을 골자로 한 아루샤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고, 유엔 르완다 지원 미션(UNAMIR)이 배치되었다.
  • 협정 파기와 집단학살 (1994): 1994년 4월 6일 하비아리마나 대통령 전격 피격 사건 이후, 극단주의 후투족 세력(인테라함웨 등)이 투치족과 온건 후투족을 대상으로 조직적인 학살을 자행했다. 학살 기간 약 80만~1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 RPF의 승리와 종전 (1994): 학살 개시와 동시에 RPF는 공세를 재개하여 1994년 7월 4일 키갈리를 점령하고, 7월 18일 사실상 전국을 장악하며 내전을 종결시켰다.

결과 및 영향 내전 종결 후 RPF 주도로 민족통합정부가 수립되었으며, 폴 카가메가 실권자(부통령, 국방장관)를 거쳐 2000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내전과 학살의 여파로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이웃 국가인 자이르(현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제1차·제2차 콩고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현재 르완다는 '민족 분열 금지' 정책 하에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정치적 자유와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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