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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홍 영정

류홍 영정(柳泓影幀)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류홍(柳泓, 1483~1551)을 그린 초상화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4년 10월 3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인물 배경

류홍은 본관이 진주(晉州)이며, 자는 자연(子淵)이다. 영의정을 지낸 류순정(柳順汀, 1459~1512)의 아들이다. 1506년 아버지 류순정과 함께 중종반정(中宗反正)을 성공으로 이끈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1511년 무과에 급제하여 사복시 부정(副正)을 거쳐 훈련원 도정(都正), 회령부사, 충청도 수군절도사, 경상도·전라도 수군절도사, 원주·정주·광주 등의 목사, 동지중추부사 겸 부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1544년 진산군(晉山君)에 봉해졌고, 1545년 을사사화 때 위사원종공신에 녹훈되어 가의대부로 승품되었으며, 1547년 훈련원 도정을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작품의 내용

이 초상화는 류홍이 1506년 정국공신 4등에 책록된 것을 기념하여 제작된 것으로, 이후 1646년경에 이모(移模)된 것일 개연성이 높다. 류홍의 증손 류시정이 충훈부 낭청이 되었을 때 아버지 류순정의 초상과 함께 이모되었다는 설이 제시되고 있다.

화면의 주인공은 청단령(靑丹領) 차림에 허리에 은대(銀帶)를 두르고, 양각이 큰 오사모(烏紗帽)를 쓴 채 교의(交椅)에 앉아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목구비는 선묘(線描)만으로 표현되었고 얼굴색은 약간 진한 갈색으로 채색되었다. 수염이 짧아 젊은 시절의 모습임을 보여주며, 눈매와 입매는 강직하고 단정한 인상을 준다. 옷 주름은 선묘로 간결하게 처리되었고, 단령의 옆이 트여 그 사이로 철릭과 답호 자락이 드러나며 패도 장식이 강조되어 16세기 초 공신 화상의 특징을 반영한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6대손인 류식(柳寔)이 "분의정국공신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훈련원 도정 진산군 류홍 화상"이라는 화제(畵題)를 남겼다.

형식상의 특징과 의의

류홍 영정은 본격적인 공신상(功臣像)과는 일부 차이가 있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아버지 류순정과 달리 류홍의 경우 국가에서 입각도형(入閣圖形)하였다는 기록이 없어,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제작한 초상화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바닥에 류순정 영정과 달리 채전(彩氈)이 깔려 있지 않은데, 이는 품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흉배(胸背)가 없는 점은 당시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1505년(연산군 11)에 명나라 홍무예제(洪武禮制)를 따라 1품에서 3품까지만 흉배를 달던 제도를 1품에서 9품까지로 확대하고 조선적인 동물 문양을 사용하도록 개정되었는데, 이 초상화에서는 4품 이하의 직급은 흉배를 달지 않는 홍무예제에 따른 표현이 나타나 있다. 이로부터 1505년에 개정된 흉배 제도는 중종반정으로 말미암아 1년 만에 원상복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류홍 영정은 공신도상과의 형식상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으며, 단정하면서도 강직한 무관의 성격을 잘 묘출해 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비단 바탕에 채색된 이 작품의 크기는 세로 176㎝, 가로 100㎝이다.

한편 경기도박물관에 위탁된 류홍의 반신상도 존재하는데, 이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류홍 영정의 전신좌상을 흉부까지만 이모한 작품으로 172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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