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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후누라타

루후누라타(싱할라어: රුහුණු රට)는 오늘날 스리랑카 남동부 지역에 해당하는 역사적 지역으로, 약칭 루후나(싱할라어: රුහුණ)라고도 불린다. 고대 스리랑카 문명의 번성지이자 문화적·경제적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마가마, 티사마하라마, 마하나가쿨라(오늘날의 암발란토타) 등 주요 도시가 이 지역에 설립되었다.

역사

루후누라타는 기원전 200년경,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마하나가 왕자가 국왕 데바남피야 티사와의 개인적 분쟁 이후 남쪽으로 내려와 건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불교 문화의 확립과 함께 국가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대 스리랑카 역사에서 루후나는 라자라타(북부 중앙 지역)에 대한 여러 차례의 저항 운동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아누라다푸라 왕국과 촐라 왕국의 지배 세력이 국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을 때에도 루후나 지역의 군사 세력은 이에 맞서 싸운 경우가 많았다. 주목할 만한 인물로는 여러 명의 촐라 장군을 물리친 비자야바후 1세와 폴론나루와를 정복한 마나바라나 2세가 있다. 루후나에서 발생한 저항군은 일반적으로 라자라타 왕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멸망

파라크라마바후 1세가 라자라타 왕국을 정복하고 가자바후 2세를 물리친 후, 그는 루후나로 원정군을 파견하였다. 루후나의 주민들과 군대는 침략에 맞서 싸웠으며, 파라크라마바후의 장군 락카를 물리치기도 하였으나 결국 패망하였다. 루후나의 사실상 마지막 여왕인 수갈라는 파라크라마바후 1세의 침략군에게 생포되어 처형되면서, 루후누라타는 서기 1158년경 멸망한 것으로 기록된다.

위치 및 영토

고대에 루후나로 확인된 지역은 주로 오늘날 스리랑카의 남부주, 우바주의 대부분과 사바라가무와주 및 동부주의 일부에 해당한다. 이 지역은 스리랑카 차(홍차) 재배 지역 중 하나인 루후나 지구와도 관련이 있으며, 현재에도 "루후나"라는 명칭이 지리적·행정적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루후누라타는 스리랑카 고대 역사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싱할라어권 역사 기록과 현대 학술 연구에서 널리 다루어지는 실제 역사적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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