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지 로돌포 보케리니(Luigi Rodolfo Boccherini, 1743년 2월 19일 ~ 1805년 5월 28일)는 이탈리아 루카 출신의 고전시대 작곡가이자 첼로 연주자이다. 그는 현악 사중주와 현악 오중주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로, 첼로 레퍼토리의 확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생애
보케리니는 이탈리아 루카에서 음악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첼로와 더블베이스 연주자였으며, 보케리니는 아버지로부터 첫 음악 교육을 받았다. 1757년경 로마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 여러 연주 여행을 거쳤다. 14세 무렵부터는 빈의 궁정악단에서 첼로를 연주하기도 했다. 파리 등지에서 연주 여행을 한 뒤, 1768년 이후 생애 대부분을 에스파냐 마드리드에서 보냈다.
보케리니는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3세 국왕의 동생인 돈 루이스 인판테의 궁정에 고용되어 궁정 작곡가 및 악사로 활동했다. 후원자였던 돈 루이스가 사망한 후에는 1787년부터 1797년까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궁정 작곡가로 활동하며 마드리드에서 베를린으로 작품을 보내는 방식으로 협력했다. 그의 후원자 중에는 프랑스의 총독이었던 루시엥 보나파르트도 있었다.
생애 후반에는 에스파냐의 후원자와 두 아내, 두 딸의 죽음을 겪으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보케리니는 1805년 5월 28일, 가난 속에서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골은 1927년 출생지인 루카로 옮겨져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안치되었다.
음악적 업적
보케리니의 음악은 궁정풍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갈랑트(Galante)' 양식을 특징으로 하며, 당시 유럽 음악의 주요 중심지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양식으로 평가된다. 그는 하이든이 확립한 실내악 모델을 따르면서도, 하이든이 보조적인 역할로만 사용하던 첼로를 보다 두드러지게 활용하는 등 독자적인 발전 양식을 보여주었다.
그는 100여 곡이 넘는 현악 오중주를 작곡했는데, 특히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한 대, 첼로 두 대로 구성된 편성은 그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100여 곡의 현악 사중주, 현악 삼중주, 최소 19곡의 첼로 소나타를 포함한 다수의 소나타곡, 약 30개의 교향곡, 12개의 첼로 협주곡, 12곡의 기타 오중주 등을 작곡했다. 그의 작품 수는 약 500여 곡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 작품
보케리니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현악 오중주 E장조 Op. 11 5번의 미뉴에트 악장이 있다. 이 곡은 우아한 선율로 유명하며, 대한민국의 수도권 전철에서 서울메트로가 운행하는 열차의 종착역 안내 방송 음악으로도 사용된 바 있다. 또한 첼로 협주곡 9번 내림나장조(G 482) 역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첼로 협주곡 레퍼토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다만 이 협주곡은 후에 그루츠마허(Grützmacher)가 보케리니의 여러 작품에서 발췌하여 재편집한 판본이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작품 번호 체계
보케리니의 작품은 프랑스의 음악학자 이브 제라르(Yves Gérard, 1932년생)에 의해 분류되었으며, 1969년 런던에서 그의 작품 목록이 출판되었다. 이에 따라 보케리니의 작품에는 "G"라는 작품 번호 기호가 붙게 되었다.
평가
보케리니는 현악 오중주라는 장르의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작곡가로 평가된다. 또한 당대 최고 수준의 첼로 연주자로서, 첼로를 위한 다양한 작품을 남겨 첼로의 레퍼토리를 크게 확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음악은 이후 첼로 연주자들과 실내악 연주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연주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