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5세(프랑스어: Louis XV, 1710년 2월 15일 ~ 1774년 5월 10일)는 프랑스의 왕조 부르봉가 제6대 군주이자, 루이 14세의 손자이며 루이 16세의 조부이다. 그는 1715년 루이 14세 사망 후 5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며, 실제 통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시기는 1723년 레지옹(위임통치관) 펠리세(Philippe II, Duke of Orléans)의 섭정 기간이 끝난 이후이다. 그의 통치는 59년(1715~1774)으로, 프랑스 역사상 가장 긴 통치 기간 중 하나이다.
주요 연혁
| 연도 | 사건 |
|---|---|
| 1710년 2월 15일 | 프랑스 파리에서 루이 14세의 손자로 태어남. |
| 1715년 9월 1일 | 루이 14세 사망 후 5세의 나이로 왕위 계승. |
| 1723년 12월 15일 | 레지옹 펠리세의 사망으로 섭정 종료, 실질적인 통치 시작. |
| 1745년 5월 2일 | 퐁텐부르 전투에서의 승리로 군사적 명성을 확보. |
| 1756년~1763년 | 7년 전쟁(프랑스와 영국, 오스트리아 등과의 전쟁) 전개, 프랑스의 식민지 손실과 재정 악화 초래. |
| 1774년 5월 10일 | 파리에서 사망, 왕위는 루이 16세에게 승계. |
정치·경제·사회적 특징
- 절대왕정의 지속: 루이 15세는 절대왕정 원칙을 유지했으나, 루이 14세에 비해 왕권이 약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 재정 위기: 전쟁 비용과 궁정 사치, 부패한 관료 체계 등으로 재정 적자가 심화되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제 개혁 시도가 있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 문화와 예술: 로코코 양식이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장식 사업이 계속되었다. 이 시기의 문학·음악·시각예술은 사치와 정교함을 특징으로 한다.
- 외교 정책: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과 복합적인 동맹과 전쟁을 반복했으며, 7년 전쟁에서의 패배는 프랑스식민지 손실을 초래하였다.
사후 평가
루이 15세의 통치는 프랑스 절대왕정 말기의 불안정성을 반영한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의 장기 통치에도 불구하고 재정 위기와 정치적 부패가 심화되면서, 후계자인 루이 16세 시기의 사회적 불만과 혁명의 씨앗이 되는 배경을 제공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예술·문화 분야에서는 로코코 양식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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