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 1787년 11월 18일 ~ 1851년 7월 10일)는 프랑스의 과학자, 미술가, 사진가이다. 프랑스 왕국 코르메유앙파리지에서 태어났으며, 파리에서 약 12km 떨어진 브리쉬르마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다게르는 최초의 실용적인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daguerreotype)를 발명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 업적으로 인해 '사진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불린다. 그의 이름은 에펠탑에 새겨진 72명의 과학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생애 및 업무 다게르는 건축, 무대 디자인, 파노라마 회화 분야에서 수련을 쌓았으며, 연극 조명과 환영 효과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1822년 7월 파리에서 디오라마 극장(diorama theatre)을 창안하여 대형 반투명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조명을 변화시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면이 변하는 듯한 효과를 연출하였다.
1829년, 다게르는 최초의 헬리오그래피(태양에 의한 사진)를 제작한 조제프 니세포르 니에프스(Joseph Nicéphore Niépce)와 협업을 시작하였다. 니에프스가 1833년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다게르는 단독으로 연구를 계속하여 은염(銀鹽, silver salts)의 감광 특성에 집중하였다.
다게레오타이프의 발명 다게르는 은을 입힌 구리판에 요오드 증기를 쐬어 감광성 요오드화은(silver iodide) 코팅을 형성한 후 카메라에 노광시키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결정적인 발견은 짧은 노광으로 생성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잠상(latent image)'을 수은 증기로 현상(chemical development)하여 가시화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해 촬영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1839년 1월 7일,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와 미술 아카데미 합동 회의에서 다게레오타이프의 발명이 발표되었다. 같은 해 8월 19일, 프랑스 정부는 다게르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이 발명을 '세계에 무료로' 공개하였다. 단, 영국은 다게르가 프랑스 정부 발표 직전에 영국 특허를 출원하였기 때문에 유일하게 특허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국가가 되었다.
다게르가 1838년 파리에서 촬영한 '뒤탕플 대로(Boulevard du Temple)'는 인물이 포착된 최초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노광 시간이 4~5분에 달했기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들은 촬영되지 않았으나, 구두를 닦고 있던 남성과 구두닦이 소년은 정지 상태를 유지하여 이미지에 남았다.
디오라마와 말년 다게르는 디오라마 극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1839년 3월 8일 파리 디오라마 극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그의 다게레오타이프 시료와 기록, 장비의 상당수가 소실되었다. 이후 디오라마에 대한 관심도 점차 감소하였다.
그가 생전에 촬영한 다게레오타이프 사진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1940년) 당시 대부분 소실되어 현재까지 극히 일부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