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슬란 임라노비치 카스불라토프 (러시아어: Русла́н Имрано́вич Хасбула́тов, 1942년 11월 24일 ~ 2023년 1월 3일)는 러시아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러시아 최고 소비에트 의장을 역임하며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러시아 헌정 위기(1993년 백악관 사건)의 중심에 섰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초기 생애 및 교육 카스불라토프는 1942년 11월 24일 당시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현 체첸 공화국) 그로즈니에서 체첸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4년 스탈린의 정책에 따라 가족과 함께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강제 이주되었으며, 흐루쇼프 해빙기 이후인 1950년대 후반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공부한 그는 1966년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1970년 같은 대학교 경제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소련 아카데미 등 여러 학술 기관에서 경제학 연구 및 강의를 진행하며 학자로서 경력을 쌓았다.
정치 경력 카스불라토프는 1980년대 후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이 진행되면서 정치에 발을 들였다. 1990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인민대표대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91년 옐친 대통령과 함께 8월 쿠데타에 저항하며 민주 세력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쿠데타 진압 후, 그는 러시아 최고 소비에트 의장에 선출되어 러시아 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옐친 대통령이 급진적인 시장 경제 개혁(쇼크 요법)을 추진하고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려 하자, 카스불라토프는 의회를 중심으로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결집했다. 이는 옐친 대통령과 의회 간의 심각한 권력 다툼으로 이어졌고, 결국 1993년 러시아 헌정 위기(일명 10월 사건 또는 백악관 사건)로 절정에 달했다. 카스불라토프는 옐친의 권력 장악에 맞서 의회 측의 주요 지도자로 활동했으나, 옐친이 군을 동원해 의사당(백악관)을 포격하면서 의회는 진압되었고 그는 다른 의회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말년 카스불라토프는 1994년 사면되어 풀려났다.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그는 이후 모스크바의 플레하노프 러시아 경제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며 학자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그는 러시아의 정치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종종 피력하기도 했다. 2023년 1월 3일, 그는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평가 루슬란 카스불라토프는 러시아의 초기 민주화 과정과 보리스 옐친 시대의 격동적인 정치적 전환기의 핵심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한때 옐친의 동지였으나, 이후 대통령과 의회 간의 권력 분점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하며 러시아의 민주주의 정착 과정에서 나타난 제도적 갈등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