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줄리아니(Rudolph William Louis Giuliani, 1944년 5월 28일 출생)는 미국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으로, 흔히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라는 애칭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뉴욕시장을 지냈으며, 특히 2001년 9·11 테러 당시의 위기 대응 지도력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후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로 활동하며 미국 정치사에서 논쟁적인 인물로도 자리 잡았다.
생애와 초기 경력
줄리아니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해럴드 줄리아니는 과거 범죄 이력이 있었던 인물로, 가족은 그가 어린 시절 롱아일랜드로 이주하며 범죄 조직으로부터 멀어지려 했다. 줄리아니는 맨해튼 칼리지에서 학사 학위를, 뉴욕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한 뒤 변호사로 경력을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 검찰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1981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국 법무부의 법무 차관(부장관급)을 지냈으며, 1983년부터 1989년까지 뉴욕 남부지방연방검사로 재임하며 조직범죄와 부패 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시기 그는 수천 건에 달하는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며 미국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검사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뉴욕 시장 재임
1989년 뉴욕 시장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처음 도전했으나 민주당의 데이비드 딘킨스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이후 1993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1994년 1월 뉴욕 시장에 취임했고, 1997년 재선에 성공했다.
시장 재임 기간 동안 그는 강경한 치안 정책을 펼쳐 중대 범죄율 감소와 살인 사건 감소 등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한편으로는 경찰의 인종 프로파일링과 경찰 폭력 논란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아브네르 루이마 사건, 아마두 디알로 피격 사망 사건 등은 그의 재임 기간 발생한 논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9·11 테러와 위기 대응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파괴되었을 때, 줄리아니는 당시 뉴욕 시장으로서 신속한 대응과 시민들에 대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로 인해 그는 '미국의 시장(America's Mayor)'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같은 해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만 이후 그라운드 제로 복구 현장에서의 안전 관리 부실 논란과 관련해 장기적인 보건 문제 및 소송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의 정치 및 법조 활동
시장 임기를 마친 뒤 줄리아니는 2002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명예 KBE 훈장을 받았다. 이후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고, 200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2016년 대선 이후부터 도널드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로 활동하며 정치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2020년 미국 대선 이후 조지아주 개표 부정 주장 등 대선 결과에 대한 허위 주장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소송 등 여러 법적 문제에 휘말렸고,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또한 재정 문제로 파산 신청을 하는 등 최근 몇 년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 생활
줄리아니는 세 차례 결혼했다. 1968년 리자이나 페루지와 결혼했으나 1982년 이혼했고, 같은 해 도나 하노버와 결혼해 2002년 이혼했다. 이후 2003년 주디스 네이선과 결혼했으나 2019년 이혼했다.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며, 자녀가 있다.
종합 평가
줄리아니는 1990년대 뉴욕의 범죄율 감소와 9·11 테러 위기 대응으로 미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공인으로 기록되었으나, 트럼프 관련 법적 및 정치적 논란으로 말년에는 그 평가가 크게 갈리고 있다. 그의 시장 재임 대수 표기에 대해서는 출처에 따라 107대와 108대가 혼재되어 있으며, 정확한 표기는 참고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